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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길의예절산책)
최진실, 예절(내외법)만 지켰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기사입력: 2008/10/15 [13:41]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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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길 한국전례원 울산지원장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뚱단지 같은 예절소리를 하느냐? 하겠지만 필자는 예절을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탈랜트 안제환이 죽은 TV 보도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상가(喪家) 문상(問喪) 예절만 지켰으면 분명히 죽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 예절에는 내외법(內外法)이란 것이 있다. 外間(외간) 남녀 간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 예절이다. 현대사회는 서구(西歐) 문명을 여과없이 받아들여서 남의 남자나 남의 여자가 죽으면 문상을 가는데 이것은 조금 생각해 볼 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오십 여 년 전만 하더라도 내간상(부녀자의 죽음)에는 남자는 문상하지를 못하고 외간상(친척이 아닌 남자의 상)에는 가지 못 했다. 후일 만났을 때 묻는다. 처가 죽었을 경우 묻는 말로는  얼마나 섭섭하십니까.' 혹은 상사를 당하시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내간상이라 가보지도 못하고' 로 된다. 지금은 문화가 바뀌어 안 가는 것이 예절이 아니다. 그러나 지킬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친구 부인이 사망 했을 경우 신위(神位)앞에서는 절을 하지 않은 것이 우리 전통예절이다. 다만 친구에게만 문상한다. 묻는 말로는 전자(前者)의 예를 든 것과 같이 하면 된다. 그런데 사망한 친구의 부인 신위나 영정 앞에 절을 하거나 한 술 더 떠 곡(哭)을 하게 되면 남편이나 남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 마치 내연 관계가 있는 것처럼. 최진실은 남자 탈랜트가 죽은 외간상 장례식장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아서 망연자실 눈물을 펑펑 흘렸으니 보는 시청자나 네티즌들이 오해를 할 수 밖에. 오만가지의 악성 댓글과 나뿐 입소문으로 그를(최진실)을 괴롭게 했으니 우울증으로 이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었다. 예절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남의 눈을 의식 하는 것이다. 내외법만 지켰으면 그는 분명히 죽지 않았을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논하는 것이 예가 아니지만 이 기회에 문상 예절을 논(論)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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