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곳도 삶의 환승역이라면 환승역일 것이다. 이 세상을 올 때는 부모의 몸을 빌어 오지만 갈 때는 혼자 떠나야 하는 게 사람의 삶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배웅을 하여 떠나보내도, 아무도 배웅하지 않아도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은 영혼 하나만 붙잡고 떠나야 한다. 우리들 삶의 거처가 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은 죽음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최명선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거처가 어디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읽어보는 시 「눅눅한 습성」은 포개진 컵을 빼면서 읽는 삶의 틈을 허물고 메우는 과정의 시가 아닌가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 몸을 누군가는 매일 좁히며 살고, 누군가는 매일 넓히며 살면서 서로 꼭 끼여 오도 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때마다 불물의 시간을 넘나들어야 마음의 틈을 좁히고 넓힐 수가 있다.
시인은 서울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오고 갈 때마다, 물컹한 습성 때문에 포개진 컵처럼 마음이 끼어 늘 아파한다고 했다. 세상의 삶이 물과 불을 잘 조절하여야 밥이 잘 지어진다고 말한다. 눅눅한 습성은 물과 불을 조절하며 바라보는 밥솥의 쌀알처럼 믿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새끼의 젖을 땐 후로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만 곁에서 지켜볼 뿐, 더는 젖을 물리지 않는다. 그 어미의 모습이 눅아 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였다.
임영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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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
『받아쓰기』외 5권 |
시조집 |
『꽃불』외 2권 |
시조선집 |
『고양이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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