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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준의 차차차
정몽구 회장님께
기사입력: 2006/05/11 [19:0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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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준 현대해상 해강 대표

좁은 감방생활을 하신지도 이제 며칠이 지났군요.

환율문제로 수출차량의 판매고전과 이익감소며, 원유상승으로 인한 원가상승문제며, 국내 경기침체로 인한 내수 판매부진문제며, 노조의 임금인상요구와 비정규직문제며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많으실 텐데 몸은 좀 불편하시더라도 모든 걸 잊고 알찬 구상을 하시라고 검찰과 정부가 엄청난 배려를 한것 같습니다.

본인도 현대 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어 청춘을 보내고 자동차로 인해 보험사고처리며, 대학 강단에서 후배들에게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답답한 심정으로 회장님께 한자 올립니다.

저는 1976년 포니를 만드는 해 현대 자동차에 입사를 하여 처음 품질 관리부에 배치를 받아 일본 미쯔비시에서 기술연수를 받기위해 회사에 다니며 9개월 동안 제품 제조 공정과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 1000개와 그 단어로 구성된 문장 3000개를 밤마다 외우고 시험 보면서 일본 기술을 짧은 연수기간 내에 마스터하기 위해서 선배와 동료 모두 정말 열심히 했던 당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 모두 연수를 마치고 국산화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이틀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 때 유행한 말들이 하루 밤을 세우면 일철, 이틀이면 이철 하면서 포니는 국산 차로서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 중동으로 카나다로 미국으로 세계 각지로 뻗어가면서 현대차는 승승장구를 하였습니다. 한때는 중동에 수출한 포니가 열사의 온도에 견디지 못해 차안에 있는 클러시 패드가 다 찌그러져 망신당한 사건이며, 캐나다에 수출한 차량의 히타가 영하 40도에서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 회사가 품질 문제로 발칵 뒤집힌 경우며, 스텔라 개발 시 진동과 소음으로 소비자들께 빈축을 샀던 일 등 수없이 많은 산들을 넘어 왔습니다.

국가의 인지도도 미약하고 선진국차량에 비해 질이 낮은 자동차를 외국에 수출하셨던 분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산차를 애용해 주어 전국의 도로에 외제 차 거의 없이 국산차로 달리게 해 주었던 일반 소비자들의 애국심도 대단 했지요.

정세영 회장님이 물러나시고 정몽구 회장님이 자동차를 맡으실 때 걱정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특유의 뚝심과 품질의지로 현대자동차를 정말 세계적인 자동차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현대 자동차는 회장님이 바라시는 대로 세계의 일류 메이커로 우뚝 서야합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리더의 꿈과 열정이 구성원들의 단결과 동기부여로 발전하였습니다. 세계의 제패를 향한 현대자동차의 리드의 꿈이 지금만큼 도전 받은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사회에 환원 하겠다는 1조원은 현대자동차 발전연구기금으로 돌리 십시요. 지금 이 눈치 저 눈치 볼 겨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뛰는 회장님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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