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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미래는 예측이 아니다. 창조다 !
기사입력: 2007/12/19 [13:1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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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논설위원/북경대학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특임연구원
 
며칠 전,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대통령 선거 거부운동을 전개한다면 어떻겠느냐’ 라는 제의를 받았다. 도저히 찍어줄만 한 후보가 없는데 선거를 한다는 것이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를 강요받는 것 같다는 얘기다. 선거철엔 굽실거리다가 뽑아놓으면 제멋대로이니 루소가 지적한, 선거일 단 하루의 국민의 권리조차도 실제로는 없다는 것이다.  공감이 간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참여정부 5년의 난정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분노가 응징에 가까운‘바꿔 바꿔’라는 유권자의 정서를 이룬다하지 않는가.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위장취업 하나만 해도 벌써 문제가 되었을 텐데, 아마도 도덕성의 문제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의 메타포가 숨어있는 것 같다.

여당 캠프에서는‘이상한 나라’, ‘노망한 국민’,‘내가 판사라면 이명박 후보를 종신형에 처하겠다’는 테마고그(선동자)들의 뻔뻔한 소리들이 터져 나오지만, 한국의 정치를 구조할 강력한 추진력을 도덕성보다도 우위에 둔 대중심리가‘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를 선택 하겠다’는 것이리라.

 징벌적 투표로 흐르기 쉬운 이번 선거를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우는 쪽을 예측해보면서 나의 한 표가 헛되게 할 수는 없다는 듯, 예측대로 던지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건강한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적 투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창조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보다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주었던 참여정부의 감성정치에 속은 유권자들의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 표리부동, 상스러움, 경솔함에 대한 등 돌림이다. 대통령의 힘은 설득의 힘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지도자가 품격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신뢰 없는 정부가 되고 만 것이다.

12월 19일,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인물을 선출하는 초석선거(founding election)가 되도록 해야 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뭉치면 산다’는 정치비전을 가졌다. 박정희 대통령도‘잘 살아 보자’고 외쳤다.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지도자의 리더십이 다소 흐리더라도 위기극복이라는 대전제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산출시킨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지도자의 비전이 보다 명확해야만 초석의 역량을 모을 수 있다.

독재시대의 정치는 판단하기 쉬웠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지만, 민주화 이후의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선호도의 차이다. 2002년 선거에서 ‘노무현의 눈물이 이겼다’고 할 만큼 개인적인 선호도가 좌우하기에 대중은 객관성이 결여된 포플리즘이라고 하는 인기영합의 선동적 감성에 이끌리기 쉽다. 유권자를 속이는 후보단일화 등 극적인 효과성을 연출하는 정치는 떠나보내야 한다.

이제 국민은 감성과 이성을 함께 움직이는 정치를 원하고 선택해야 한다.

대통령직은 강인하고 합리적인 추진력 그리고 비전이 있어야 하기에 이것을 판단하는 유권자가 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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