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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사설
태화루 중수 상량문 원본 발견
기사입력: 2009/02/13 [09:0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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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성신문
조선후기 울산도호부 객사 남문루 중수 때 쓰였던 ‘태화루 중수 상량문’ 원본이 에  발견되었다.  그동안 태화루 중수 상량문 사본이 시중에 나돌기는 했지만 원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상량문은 현종 8년(1842) 3월 초순 이근필이 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글을 쓴 이근필은 당시 울산부사로 재임했던 이현서의 아들이다. 상량문 원본 상태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양호한 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울산시는 그동안 태화루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태화루 추정 인근 지역의 땅을 매입하고 연차 사업으로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태화루의 정확한 역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울산시가 태화루 복원을 하고 있지만 태화루가 언제 창건되었고 또 소실된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 태화동 인근에 신라시대 태화사가 있었다는 사실과 또 주위 자연 경관을 볼 때 과거 로얄예식장 자리에 태화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물론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초기만 해도 울산에 들렸던 시인과 묵객들 중 태화루와 관련된 글을 많이 남겨 이를 바탕으로 태화루의 자리와 모습 그리고 규모를 유추하고 있지만 태화루와 관련된 문헌이 공식적으로 발견된 적은 없다.
물론 이번에 발견된 태화루 중수 상량문 원문도 우리들이 이처럼 궁금해 하는 역사적 사실을 풀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문헌은 태화루가 중수 될 때 쓰여 진 것이 아니고 태화루가 없어진 후 객사 자리에 옮겨 복원한 건물을 중수를 할 때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상량문이 쓰여진 것은 150여 년 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자료를 소홀히 생각해서 안 되는 것은 이 자료를 통해 우리들이  태화루 복원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울산시가 태화루를 복원하는 데는 부지 매입 등에 많은 경비가 들어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우리는 태화루 복원이야 말로 울산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태화루 중수 상량문 발견으로 태화루 복원에  대한 전 시민의 의지가 더욱 굳건해 질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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