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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엉터리를 찾는 눈
기사입력: 2007/12/06 [14:2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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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건영화학 대표
 늦은 가을날의 산등성이, 개울가 언덕베기 여기저기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갈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이 저녁이거나 밝은 달밤이면 그 자태가 말 할수 없이 아름답다.
헤어졌던 오래된 옛 친구 생각도 나게 할 뿐더러,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며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이들을 그리워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떤 시인은 갈대의 떨림을 울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이 갈대를 흔드는 것은 혼자서 조용하게 울고 있는 모습으로 시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겠지.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것, 애써 울음을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게 눈물을 닦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살아지게는 되어있다.

목구멍에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먹어야하고 잡히지 않는 일을 싫거나말거나 해야 한다.

그래서 삶이란 힘든 거 아니겠는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사람 그렇게 안 보았는데 이상하게 보인다든지, 하늘같이 믿었는데 억장이 무너지듯 실망시키는 경우라든지. 바람에 지나듯 듣고 겪는 작은 경우가 우리를 몹시 슬프게 할 때도 많다.

그 사람을 시인으로 보았는데 시중잡배보다 더 추잡하고 꼴잡한(?)경우의 사람도 있고, 그 사람 지체 높은 선생님으로 정년을 맞았는데 턱도 아닌 일에 생색내며,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을 떼먹으려든다 라는 돌아다니는 말을 들었을 때, 그만 그 사람이 쓴 책도 글도 읽기가 싫어지는 것이 본심이다.

말하는 만큼 글을 쓴 만큼 아름답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의 기본은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가끔은 글쓰기가 두렵다. 글보다는 사람이 더 좋은 경우도 있고, 그 사람 그 자체는 별것도 아닌데, 꾸밈이 그럴듯해서 글이 훨씬 잘났다는 경우도 많다.

이왕이면 그 사람의 글 보다 사람이 더 좋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더멋 지고 좋을까.

옛날에 읽었던 "서머셋모옴"이 쓴 "달과6펜스"가 떠오른다.

중산층의 평범한 아내 "블랑시"가 남편이 데려온 거지꼬락서니의"스트릭랜드"란 남자에게 처음에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서 광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장면이 생각난다.

지금쯤의 내 나이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옛날 젊었던 그 시절에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멀쩡하게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서 크나큰 충격으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하잘것없는 존재들 속에서 참으로 멋진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눈을 뜨고 자세히 크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 당장 코앞에 닥칠 우리들의 운명을 갈라놓을 중대한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더 날카롭게 사람을 이해하는 가운데, 용서도 사랑도 연민도 이해 그다음에 생겨나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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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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