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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슬픈 가을
기사입력: 2006/11/14 [17:2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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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건영화학 대표

 2000년 전 시인 송옥은 「초사(楚辭)」란 詩에서 "슬프고도 쓸쓸한 가을 기운이여, 초목이 떨어져 뼈만 앙상하네"라고 적었다. 당나라 두보는 "만 리 밖으로 노상 떠도는 이 슬픈 가을이여"라고 읊기도 했다.

 가을이 슬프기는 슬픈 계절인가 보다. 여름내 정신없이 뜨거웠던 날들이 때로는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가며 우리의 정신을 흔들기도 했었고 태풍은 또 얼마나 삶을 괴롭게 했던가. 날이 가고 달이 바뀌고 하늘은 물색없이 파랗기만 한데, 기세를 드높이며 푸르렀던 잎들이, 기고만장하던 성질은 다 어디로 가고 노란 낙엽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져 맥없이 누운 모습이 마치 우리 인생과 비슷한 데가 있어 더욱 슬프다.

 당대의 이름을 떨쳤던 서거정, 김시습, 이정 .... 등등 이 땅의 거장들도 `슬픈 가을`이란 제목으로 많은 詩를 남겼다.

 그럼 가을은 왜 슬픈가. 그저 자연의 이치가 그래서 그런다면 해답이 너무 싱겁다. 남자는 가을이 되면 괜히 슬퍼진다. 서리가 지천으로 내려서 그렇기도 하고 다가올 추위와 한두 장 남은 카렌다를 넘기면서 오는 세월의 무상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상하게도 가을이 되며 바람만 스쳐도 쓸쓸함을 느끼게 되고 달만 쳐다보아도 지나간 날들 뒤돌아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게 된다.

 남자가 그렇게 슬퍼지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심하게 센치멘탈한 이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아도 그들조차 슬퍼할 줄만 알지 왜 슬퍼지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돈이 없어 너무 가난해서 가을이 되면 슬퍼진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돈 만으로는 인생이 충분하지 않다는걸 알게 되면 더욱 슬프다. 오죽해서 「고독」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던가. 또 어떤 이는 고독은 배가 불러서 얻는 병이라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인간이 단순무식한 존재라면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 세상이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해서 얻게 되는 병이 가을을 타는 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서로에게 갖는 뜨거운 관심에서 얻을 수 있다. 관심의 정도는  단순한 양과 횟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진정성」과 「존중함」이 그 척도가 되겠다.

 한두 달에 한번을 만나더라도 두세 달에 거는 한 번의 전화통화에서도 진실 된 관심과 존중받고 있음이나,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될 때에 상대방에게서의 뜨거운 관심이 가슴속 깊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주변동료나 가족이나 친구 등 흔하게 만나는 가까운 사이의 관계를 등한시 한다면 결국 인생이 실패 할 수 도 있다. 작은 실패는 기획력이나 테크닉의 서투름에서 비롯하겠지만 큰 실패는 결국 인간관계에서 오게 될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독단적인 고집이나 사고일 것 같다. 뜨거운 관심은 배려를 낳고 배려는 사랑을 낳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름다웠던 가을이 조금씩 밀려나고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온다. 다정한 친구와 가까이 문수산이라도 오르면서, 우리 밀 칼국수 한 그릇이라도 함께 나누어 보자. 그런다면 거기에도 작은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어진다. 괜히 가을을 슬프게 바라보지만 말고, 사람에 있어 마음 아파하고 슬퍼지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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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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