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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밥그릇 싸움만 하는 나라’ 변해야 한다.
기사입력: 2006/10/04 [16:13]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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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며칠 있으면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르는 팔월 한가위 명절이다.
 
떨어져 있던 가족친지들이 함께 모여 풍년을 노래하는 민족의 명절인데 고속도로에서부터 차가 막혀 서울, 부산까지 12시간이나 걸리는 거대 주차장이 되어 온몸은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게다가 막상 고향에 가면 잘난척ㆍ있는척 돈자랑 하듯 자가용, 명품으로 치장하기 위해 빌려서라도 돈 잔치 하듯 법석을 떤다. 만나는 사람마다 돈 돈 돈타령이 무성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 만능주의에 빠져 돈을 좇기 위해 밥그릇 싸움만 하는 나라로 타락되고 있지는 않는지..

국제화의 길은 말보다 문화에 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이 세계 제일의 명품이라는 자존심이 우리 노동자에게 있는가.
 
제품을 먼저 세계 제일의 상품으로 올려놓는 관심대신 인건비는 세계 제일을 차지하고자 노동쟁의가 길거리를 메운다.
 
자신들의 근로조건 향상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타 업종의 노동쟁의까지 평등과 정의의 사회구현이라도 하는 듯 착각하며 동정파업을 하는 막가는 노동자의 내심은 ‘사장만 에쿠스 타고 우리는 타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 밥그릇 싸움 같은 심정으로 일갈한다.

우리는 결과의 평등을 선호하지만, 세상에 결과적 평등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헛된 꿈이다.
 
평등은 기회의 평등으로 열려져 있으나, 열심히 노력하여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와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번영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해 내기위한 진통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국도, 사회도, 국익도 생각지 않고 오로지 눈앞에 쉽게 움킬만한 제 이권 그것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가득한 나라가 되어버리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논의가 찬·반의 감정적 아우성으로 대립하는 것을 본다. 야당은 환수해야 한다하고, 여당은 이런 야당을 수구세력이요 시대착오적 망국 행위라 맞서고 있다.
 
1970년대 고 박정희 대통령시절 전작권 환수에 환호하던 사람들... 이것이 민족의 자주라고 찬양하던 조선ㆍ동아일보가 작금에는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
 
정작 논의의 전개는 전작권이 우리에게 넘어오면 한반도 유사시 우리 한국을 지키는데 ‘문제성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실증적으로 구체화되어야 함이 시급한 실정인데 말이다.
 
중국의 무한 팽창주의와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의 민족적 군사력을 억제할 수 있는 국군의 전력 증강을 모색해야 함에도 일방적인 자기의 소리만 내면 그만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판 중심주의’는 구속되거나 피의자로 검사의 심문을 받아 본 사람의 눈에서는 ‘피 눈물이 난다’는 사실에서 입각해 본다면 진정 쌍수 들어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왜 비판이 일어날까?! 선입견의 독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키 위한 신선한 시도마저 권한싸움의 연장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여 형평성있는 긴장관계를 유지시키는 법마저도 법원을 시민사회보다 비견할 수 없이 우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주심과 부심의 견해가 서로 엇갈리듯 비추어졌기에, 사법영역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여지기에 국민들은 식상하여 항시 밥그릇 싸움만 하는 가진 자의 모습으로 간주해버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세계는 22세기를 향해 매진하는데, 조선시대 말 사색당쟁 싸움하듯 허구헌 날 사사건건 발목잡고 개인비리 까발리고 자신들의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만연한 부패상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이제는 국회의원 ‘리콜제도’를 제창하는가 하면, ‘정리해고’ 하자는 주장마저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주머니 채우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못된 사회구조를 걷어 내야한다.
 
관료들이 민간 기업을 건전하게 도와주고 경제를 활성화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예와 이익으로 연결된 기업을 돕기 위해 국가정책을 오도하는 현실을 이라크에서 보았기에 다시한번 일어서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구태의 낡은 틀은 버려야함을 주장한다.

결국 너도 살고 나도 잘사는 멋있는 인생 목표를 실현하기위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려면 먼저, 일방의 자신의 소리를 죽이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정신문화를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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