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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석유와 국제정치의 역학
기사입력: 2008/10/15 [14:1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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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논설위원
1955년 4월 18일부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29개국이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참석했던 회원국들이 1961년  비동맹국회의'를 창립하고 비동맹운동에 참여한 산유국들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하여, 석유의 생산과 공급에 대한 열강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석유를 그들  OPEC'의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동의 이슬람국가들이 석유가 만들어낸 부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슬람가치와 문화를 확산시키고 자신들의 소위 성전(聖戰)을 가속화하므로 1990년대 중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착에 대한 흥망성쇠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꾸어 놓았다.
  1933년, 이자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간에 오슬로 빌 워싱턴 평화협정에 의해서 정착촌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1996년 11월 유대교 정통주의 소속의 한 젊은 청년에 의해 암살된 라빈의 죽음은 정착촌을 급속히 무너지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오사마 빈라덴으로 하여금 이슬람성전을 수행하게 한 촉진제가 된다.
   제 1차 걸프전쟁 시, 미국이 사우디에 미군을 주둔케 하자, 이슬람국가의 부와 석유를 헐값에 도둑질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강도와도 같은 미국과 서방을 성토하기 시작함에 따라,  빈라덴의 오랜 근거지를 없애고자 한, 미국주도의 2001년 아프카니스탄 지역의 대규모 공격전으로 이어졌다.
  2002년 배럴당 26달러였던 석유가 이라크와의 전쟁이후, 멈출 줄 모르는 유가상승의 고속행진을 계속하다가 금융위기를 통해서 하락세로 돌아선다.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의 챠베스 대통령의 미국 도전에 대응하여 미국은, 챠베스가 2004년 4월 군대 파벌조직에 의해서 쫓겨날 때 새로운 군사정권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틀 후, 챠베스가 다시 복귀함으로 인해 미국과 석유시장은 고통의 일로를 겪게 된다.
   또한 2000년, 러시아 대통령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이 선출된다. 2003년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유코스의 소유주인 미하일 코도르콥스키가 체포되어 사기와 탈세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유코스는 파산당한다. 러시아 제 5위 석유회사인 사이브네포트의 지배 지분을 가즈프롬이 인수함에 따라 러시아 석유시장은 가즈프롬이 독점하기 시작한다. 1999년 하루생산량 610만 배럴에서 현재 1,000만 배럴이상의 생산속도로 성장해 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1978년 연평균 9%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1990년 230만 배럴, 2000년 470만 배럴, 현재 하루 800만 배럴 이상을 소비하므로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석유소비국이 되었다.
  세계는 지금 이슬람테러행위, 석유자원의 고갈의 위협, 거대한 소비, 게다가 석유공급이 원활하지 못함으로 인한 두려움까지 가세하여 세계시장의 석유가격이 널뛰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도 그 두려움의 여파로 급변하고 있다.
  유전발견에서 개발생산 비용 및 실제 수요자에게 공급되기까지 배럴당 30달러이면 적정선이어야 할 유가가,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과장된 석유위기를 야기시킨 까닭에 최악의 머피의 법칙이 무자비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석유안보에 대한 잘못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배적인 강대국과 강자 패러다임이 남아있는 한, 세계는 끊임없이 가격의 폭등세와 국제간의 갈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서로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끊임없는 실수와 드라마 같은 위기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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