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가 - 김원각 - Ⅰ 붓 갈데 안 갈데를 분별조차 못하면서 마구 휘둘러 놓은 파지(破紙) 직전의 그림 한 폭. 내 마음 펼쳐낸다면 아 이런 형국 아닐는지. Ⅱ 먹물에 싸인 여백들이 더욱 희게 보이는 순간 뼛 속에 와 소리치는 깨우침 하나 있다. 물 안든 나머지 마음 그거나마 잘 닦으라는.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빈 가지로 서성이는 나무들과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보며 삶에 대해 생각한다. 어쩜 우리 산다는 것은 그림 한 장 그리는 일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첫 붓을 들었을 때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곳엔 유년의 꿈을 초록으로 꾸며가던 기쁨도 있었을 것이고, 아름다운 상처로 남은 첫사랑도 있었을 것이다. 더러는 새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 축복의 시간과 함께 숨 가쁘게 달려온 비탈진 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러다가...아직 살아있다는 이유로 알곡 가득 채울 옹기 하나 그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날들이 어느 날 문득 되돌아와 “붓 갈데 안 갈데를 분별조차 못하면서 그려온” 파지 직전의 그림 한 장으로 놓여진다면, 그 얼마나 참담한 일일까? 물질만능의 이 시대에 자기성찰의 시조 한 수 읽으면서 “물 안든 나머지 마음 그거나마 잘 닦아 가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을 쓴 김원각시인은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강원도 인제에 살면서 활발한 문필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뭇다부른 정가〉, 〈허공 그리기〉, 〈어느 날의 여행에서〉 등이 있으며, 담백한 시어와 해학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만해 불교 문학상, 정운 시조 문학상, 중앙시조 대상 등 다채로운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90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불교방송의 원고집필과 팔만대장경 번역에도 주력하고 있다. 12월! 망년회로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할지라도 한 번쯤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으리라. 저마다 그려낼 명화가 모여 만들어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건배를! 추창호시인 약력 경남 밀양 출생/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계간 ‘시조와 비평’ 및 ‘월간문학’ 신인상/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울산시조 사무국장 및 울산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시조집 <낯선 세상 속으로>/ 시조전문웹사이트 ‘시조사랑’(http://user.chollian.net/~ckd18) 및 동시조교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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