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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발이 8 “다리가 의사다”
기사입력: 2008/12/26 [17:3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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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만 울산문인협회 회장
   
안녕하십니까? 설레발이입니다.
 요즘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시내 곳곳에 차가 밀리고 있습니다.
밀리는 차 속에서 짜증스러워 하다가 문득 ‘다리가 의사다’는 말을 생각합니다.
자고로 마차를 타는 사람보다 마부가 더 건강하고 우유를 받아먹는 사람보다 우유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내일부터 당장 걸어 다녀야지 결심을 해보지만, 그게 어디 잘 됩디까.
 ‘다리가 의사다’는 이 말은 참으로 절묘합니다. 걷기운동캠페인을 벌일 때 흔히 이 구호를 외칩니다. 다리가 튼튼하면 몸도 좋아져서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대자연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나의 종합병원이요, 내 두 다리가 나의 주치의이다. 무엇보다도 건강하려면 뛰지 말고 걸어야 한다.” (‘이강옥 박사의 걷기’에서 인용)
 최근 울산에서 제1회 울산태화강 국제걷기대회가 있었습니다.
 울산여성신문에서는 ‘걷자, 제대로 걷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다투어 이 걷기운동을 다양하게 시민들에게 소개를 하고 연속적으로 권장을 한다면 최소한 신문 구독료가 아깝지 않을 겁니다.  
 이 걷기운동 캠페인은 울산을 생태문화도시를 만드는데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걷기대회가 울산에서 처음으로 개최 되었다는 것은 울산이 쾌적한 생태문화도시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백 만 불짜리 홍보나 다름없습니다.
 걷는다는 거는 인간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행위입니다.
 현대인들의 비극은 너무 숲을 떠나 살았고, 이러다 보니 너무 걷지 않는데서 비롯됐다고들 합니다.
 ‘차타고 못 보았던 꽃, 걸으면서 보았네’.
 이 평범한 진리를 설파 하신 분은 베트남 출신으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입니다. 이 스님은 걷기를 싫어하는 현대인에게 ‘의식적인 걷기’를 권장합니다.  
“우리는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지 않을 때는 늘 걷는다. 그러나 어디로 걸어가고 있을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도착할 수 있고, 정토 혹은 신의 왕국으로 들어설 수 있다. 발이 땅에 닿는 그 순간을 자각하고 또 호흡을 자각하면서 걸어보라. 그러면 한 번의 들숨 혹은 날숨 동안에 몇 걸음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숨을 들이쉴 때는 ‘인(IN)’이라고 말하고, 내쉴 때는 ‘아웃(out)'이라고 말해보라. 그러면 걸으면서 명상을 하는 것, 즉 보행명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습관이 되게 하라. 그것은 우리가 언제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걸기는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힘을 갖고 있다. 우리 안의 화를 끄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걷기라면 소설 ‘좀머 아저씨 이야기’의 주인공 좀머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좀머씨의 걷기는 거의 병적인 집념에 가깝습니다. 
 좀머씨는 지팡이를 쥐고 배낭을 달랑 메고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걸어 다녔습니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빛이 너무 뜨거워도 깡마른 좀머 아저씨는 줄기차게 걸어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호수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좀머씨의 걷기는 죽음에게 자기가 살아있다는 시위일지 모릅니다. 아니면 애초에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자연회귀의 걸음일지 모릅니다. 걷기는 이렇게 철학적인 상징성도 있습니다. ‘걸어서 천국까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끈덕지게 걷는다면 천국은 멀리 있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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