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라는 것은 양심이나 도리에 어긋난 일을 죄라 말하고 있다. 이 죄라는 것은 사람 세상에서만 한정되어 적용이 된다.
자연은 약육강식에 의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강한지 느티나무가 강한지 알고 보면 느티나무가 더 강하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서는 승자다.
김인석 시 「죄의 눈금」을 읽으며 혼란스러운 점이 많았다. 죄의 바늘은 어디에 중심이 잡혀 있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죄가 무거운지, 죄의 줄기세포는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것인지... 등등의 의문을 더 품게 하고 있다.
죄의 무게는 어떻게 보일까? 정말 죄를 규정한다면 어느 것이 죄일까. 사람을 죽이는 것, 고문하는 것, 굶주리게 하는 것, 병들게 하는 것, 수많은 것이 죄의 항목으로 정해져 법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반대로 죄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묻고 싶다. 김인석 시인은 양심의 무게를 두고 죄의 무게라 말하고 있다고 본다.
법의 사전에 적용은 되지 않으나 양심의 눈금이 움직여 스스로 자기반성을 갖게 하는 마음이 죄의 눈금이라 바라보는 듯하다. 진실이 더 강하기 때문이 죄의 눈금이 보인다. 진실을 굳건히 지켜가길 바랄 뿐이다.
시인 임영석
시집 『받아쓰기』 외 5권
시조집 『꽃불』외 2권
시조선집 『고양이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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