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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근
불천위(不遷位) 제사문화
기사입력: 2018/02/13 [12:1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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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근 전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UWNEWS

한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이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있다. 가장 먼저 염려스러운 것이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의 고달픔이고, 그 다음이 먼 길 찾아오는 형제자매들이다. 과거에 비해 이즈음 많이 간소화 되었다고 해도 그래도 이름 있는 종택에서는 여전히 제사상 차리기가 만만치 않다. 육해공 3종육의 도적(都炙)은 기본이다. 뿐이겠는가? 각종 떡과, 나물, 국을 비롯한 제물은 그 차림이 여간 신경쓰이고 번거로운 일이아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수 천년동안 이어져온 미풍양속이라서 허투로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문중이나 또는 집안에서 변화 조짐이 심화되어 이미 년 중 제사를 간소화한 가정이 많아졌다. 4대조까지 지냈던 제사를 증조부까지 3대로 단축하고 제일(祭日)을 각기 내외분 합제(合祭)해서 지냈다. 몇년사이 그것마져 어느 날 길일을 택해 모든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는 간소화를 택하고 있어 그동안 먼 옛날부터 지켜오던 전통이 이즈음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전파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의성김씨 천전파 종택에서조차 300년을 한결같이 지켜오던 자시를(저녁11시~새벽1시) 지나서 지내던 제사를 저녁으로 바꾸어 지내오고있기 때문이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2017년 8월 5일 (음력 6월 14일)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 천전파(川前派) 종갓집인 청계종택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증시조인 청계공 김진(1500~1580)의 부인 여흥 민씨의 제삿날이었고, 이 또한 고조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유교식 제사 예법(3대봉사)의 예외였다. 유교에서는 제사가 5대로 넘어가면 오세측천(五世測天)을 적용해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 큰 공을 세웠거나 학문과 덕이 높은 이에 한해서 영구히 제사를 지낼 수 있게 조정에서 허락을 하였었다. 그래서 일년에 수십번씩 제사를 지내는 종가집은 여기에 속하는 조상이 많은 명문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청계종택은 시조인 청계공과 그 부인을 위해 불천위 제사를 지낸다. 두분은 다섯명의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한 덕분에 불천위라고 지정되었다. 그래서 종가집 건물은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 불리었다.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선조 때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왜의 침략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던 학봉 김성일(1538~1593)이 이 청계종택의 넷째 아들이다. 이집안 5형제는 경북 일대에서 종택과 집성촌을 이뤄서 현재 전국에 5만여명의 후손이 존재한다. 16대 중손인 김창균(64)은 제사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이 하나 둘 모여든 지손(支孫)이 20여명에 이르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각처에서 참석한 제관들이 참석자 시도록(詩道錄)에 이름을 올렸다. 저녁 8시쯤엔 제물을 제사상에 차린다. 육탕, 어탕, 계탕 3탕과 떡과 과일을 상에 진열한다. 자고로 양반집은 3탕을 올리고, 평민은 단탕을 올렸다고한다.

 
진설이 끝나면 종손이 동택 뒤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오는 출주(出主)로 제사가 시작된다. 다음 종손이 분향하고 술을 붓고 절하며 강신(降神)으로 이어진다. 순서에 따라 초헌, 아헌, 종헌을 진행하고 조상께 식사를 권하는 유식(侑食)과 보내드리는 사신(辭神)을 마치면 신주를 다시 사당에 모시게되며 이로써 제사는 끝이나게된다.

 
청계종택은 불천위 제사 2번, 4대조기일 제사, 명절의 차례 등 1년에 약 25번의 제사를 지낸다고한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불천위 제사를 올리는 곳이 지난 4월까지 우리나라에서 176곳중 106가문이 자시에서 저녁이나 오전으로 시간을 바꾸고 그중 10곳은 기일이 아닌 특정일로 제삿날을 옮겼다니 대종택이 많은 안동, 의성, 영천 지방에서부터 서서히 제사문화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집안도 예외는 아니다. 대종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선친께서 4대까지 지내던 제사를 이후엔 3대까지만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것마저 20수년 전부터 부부합제로 지내다 이즈음에 들어서는 통합제를 지내자고 안사람이 제의를 해왔다. 이미 주변의 여럿이 그렇게 했고, 추석, 설명절에도 간략하게 제물을 준비하자고하였다. 이 또한 귀담아 들을 일이다. 기일 제사라 명절에도 형제자매가 오고감이 적어져서 특정한 제물 이외에는 모두 쓰레기로 버리게 되니 이보다 더한 낭비와 손실이 어디에 비하겠는가? 생각다 못해 올 추석한가위 음식은 송편 한접시, 생선 한마리, 산적 한궴으로 간소하 하고 실과(조, 율, 시, 이)로 축소하려고 한다.

 
이것마저 남기지 않고 먹을지 의문도 생길정도로 대한민국이 이토록 편하고 풍족하게 살기좋게 될줄은 미쳐 생각지도 못했다. 예로부터 지내온 불천위(不遷位) 제사 문화도 이제는 시대에 맞춰서 조금씩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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