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획/특집
기획취재
[절기] 입동과 소설
기사입력: 2017/11/18 [09:44]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UWNEWS

 ◆입동(立冬)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입동이라고 한다. 양력으로는 11월 7일 또는 8일 무렵, 음력으로는 10월에 들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225도일 때이다.


 이즈음에는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동면 준비에 들어간다. 

 

이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한다.

 

입동을 전후해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한다. 농가에서는 냉해(冷害)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기도 한다. 

 

또한 입동에는 과거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다. 대개 음력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준비해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그리고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특히 팥시루떡을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해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했다. 


또한,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입동과 관련한 풍속에는 ‘입동보기’가 있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온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다. 또 경상남도 도서 지방에서는 입동 무렵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양 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 된다고 한다. 이를 ‘갈가마귀 점치기’라고 한다.

 


◆소설(小雪) 
24절기 중 스무 번째 절기. 이날 첫눈이 내린다는 뜻으로 소설(小雪)이라고 한다. 양력으로 11월 22일 또는 23일 무렵, 음력으로는 10월에 들며, 소설은 입동 후 15일,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전 약 15일에 든다.


소설은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급강하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 전에 김장을 하기 위해 서두른다. 또,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한다.

 이외에도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대개 소설 즈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진다.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에는 배를 잘 띄우려 하지 않는다.

 

손돌바람과 관련된 전설로,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을 가던 때라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仁祖)가 한강을 건너던 때라고도 한다.

 

사공 중에 손돌(孫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피난을 가는 왕을 모시고 뱃길을 서둘렀지만, 왕이 보기에는 손돌이 자꾸 일부러 그런 것처럼 물살이 급한 뱃길을 잡아 노를 젓는 것이었다. 왕은 의심이 가 신하를 통해서 물살이 세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했지만 손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내 왕은 손돌을 참수(斬首)했고, 손돌은 죽기 전 바가지를 하나 내놓으며 물에 띄운 바가지가 가는 길을 따라 뱃길을 잡으라고 말했다.

 

이어 물살은 점점 급해지고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 준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웠다. 바가지는 세찬 물살을 따라 흘러갔으며, 왕을 실은 배도 그 뒤를 따랐다.

 

무사히 뭍에 내린 왕은 그때야 비로소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알았다. 뭍에 도착한 왕은 곧 후회하고 경기도 덕포진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장지(葬地)를 정해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이때가 10월 20일이었고, 매년 소설 즈음인 이맘때가 되면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