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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3)
기사입력: 2017/07/07 [11:1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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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UWNEWS

 올 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정됐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 놀라운 일이다. 푸틴 대통령의 위상이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미국 대통령을 무릎 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부각되는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나들면서 그 힘을 과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과 중동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를 통해 국제 질서를 조금씩 재편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의 이런 힘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은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에 의해 독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있던 독일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배상금을 물어 줄 돈이 없었다. 결국 독일의 공공시설과 중공업 장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값비싼 장비들을 소련이 싹쓸이 하듯 강탈했다. 전쟁배상금 명목이었다.


당시 물자의 가치는 660억 마르크 정도였고, 기술의 핵심인 엔지니어 3천 5백 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소련의 미사일 개발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결국 우주개발의 선두주자가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


20세기 초까지 소련은 세계 최대 식량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와서 소련은 식량 의 자급자족을 하지 못했다. 지구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면적을 가지고, 3억의 인구를 먹여 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수입에 의존했다. 세계 식량의 45% 물량을 수출하던 나라가 16.4%를 수입해야 할 만큼 농업의 불균형 정책이 작용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또 소련은 예로부터 석유와 금의 주요 생산국이었다. 1970년대 금과 석유 가격이 폭등했다. 거기에다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석유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 결과 소련은 국제무대의 졸부 나라가 되었다. 돈이 넘쳐나자 미국과 본격적인 핵무기 경쟁에 돌입했다. 군비를 확장하고 주변국가와 장기적인 소모적 전쟁 상태로 빠져들었다.


미국은 석유를 무기화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여기에 미국의 석유 무기화 전략이 오일 피크(Oil Peak)로 나타났고 국가 유가도 폭락했다. 석유수출에 의존한 소련의 경제는 침체 되었고, 전국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소련정부는 속수무책으로 경제 위기를 대면했고, 예측성 없는 정부에 국민은 매우 분노했다. 외채부담은 가중되었고 재정 적자도 악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주변 국가로부터 고립되는 처지에 이른다. 그 동안 석유 원조를 받았던 동구권 국가들이 돌아선다.


금과 석유의 수출 수입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식량 수입 적자를 메워왔지만, 더 이상 적자 경상수지 적자를 더 이상 막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자, 국가는 존망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소련(소비에트공화국)이 세워질 초기 식량부족 현상으로 제정러시아가 무너졌는데, 다시금 배고픈 국민들의 불만은 최고조로 치솟았다.
1905년 대한제국과 국교를 단절한 소련은 1990년 9월 30일에서야 회복한다.


이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일환에 힘입어 1990년 12월 13일 역사적인 모스크바 방문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소련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30억 달러 차관을 제공받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큰 기대를 가지고 관계심화에 나선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991년 9월 17일 유엔 총회에서 남북 동시 가입이란 선물을 안겨주며 호응한다. 소련은 그 대가로 시베리아와 극동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원했지만 고르바초프 정권이 무너지면서 소련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러시아 정부가 탄생한다.


러시아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보리스 리콜라에비치 열친 대통령이 취임함으로 변화된 러시아의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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