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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유승준 죽이기'에 감춰진 또 다른 이면
주홍글씨를 각인시키는 데 급급한 네티즌들의 집단 비판주의
기사입력: 2005/06/02 [17:4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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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 기자

우리나라에서 병역문제는 대중으로 하여금 도저히 너그러운 관용을 끌어내지 못하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아 계속해서 따라다닌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낙선한 이회창 후보의 패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병역문제도 그 중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민들은 정책적 관심 못지않게 이 후보와 관련된 병역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이후로 각종 선거와 공직자 검증사례에서도 병역문제는 도저히 피해나갈 수 없는 하나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부담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갖은 술수와 잔꾀를 부리는 계층을 보아온 소시민들의 심리적 박탈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집단으로 한 사람을 비판하고, 어떠한 이유를 대더라도 궁색한 변명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도 그래서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어차피 유승준 죽이기로 진행될 수순
 
유승준에 대한 방송이 예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 각종 연예매체들은 이를 빠르게 전송했고, 그에 대한 기사는 ‘방송복귀’, ‘컴백하나’ 식의 여론 악화몰이용 보도 뿐이었다.
 
방송의 순수한 내용에 관해 초점은 맞추어지기 보다는, 병역문제의 한 가운데 있는 유승준에 대해 대중들이 어떤 여론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쏠린 보도행태를 보였다.
 
만약 방송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더라도 매체들은 매일같이 방송사 게시판을 들락거리고, 시청률을 체크하며 ‘이제 유승준 용서하나’ 식의 물음표형 기사를 양산해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승준이 병역을 기피해 문제가 야기될 당시의 압도적인 비율과는 다르게 한 여론조사에서 44% 정도가 방송 절대반대라고 답했을 만큼 유승준에 관해 집단적인 비판이 다소 누그러진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매체의 객관적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티즌들은 유승준이란 이름 석 자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고, 중립적 판단을 내린 네티즌들이 자기 의사를 개진할 '배짱'이 도저히 일지 못할 정도로 하이에나식 마녀사냥은 계속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유승준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거부감을 나타냈으며, 컴백에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소식이 들려와도 이를 아예 믿으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결혼생활과 생활모습들을 궁금해 하는 대중을 위해 사생활을 담담히 보여준다는 방송의도에도 악의적인 인신공격과 명예훼손 댓글들이 난무했고, 이것은 여론이란 이름으로 정형화되었다.
 
즉, 유승준이라는 컨텐츠를 건드리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유승준 죽이기‘의 수순을 매체와 네티즌이 함께 밟아나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집단비판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네티즌의 방송 포기 요구, 그 다음은 ?
 
유승준 방송을 제작한 케이블 방송사는 여론 비판을 수긍하고 방송 자체를 포기한다는 입장을 당일 방영 약 3시간 전에 발표했다.
 
만약 방송이 나간 상황에서 비판여론이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야기됐다면 이해가 갈 만한 대응이지만, 첫 방송이 나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네티즌들의 비판여론을 받아들인 일이 과연 정당했는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방송사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단지 미운 털 박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이익단체의 알력 행사와 같은 행태를 보인 것은 한국 네티즌의 수준 차원을 떠나 절차상의 문제가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조언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넘어 방송제작 자체에 네티즌이 깊이 관여되고 있는 사실의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승준은 병역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국적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당시 병무청이 내린 판단과 입국거부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당시 다수의 의견이 설사 찬성이었다 할지라도, 이미 3년의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다소 심한 것이 아니었냐는 소수의 의견을 아직도 절대 존중하지 않는 네티즌의 문화는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다수의 횡포라고 보여진다.
 
현재 활동하는 많은 연예인들 중 이미 병역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애매하게 대처하고 있는 이들, 또 다른 나라 국적으로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고 상업적인 활동을 계속하는 연예인들에 대해선 과연 네티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가.
 
네티즌들의 일관된 논리대로라면, 당장 모든 연예인들을 조사해서 해당 연예인은 강제출국 시킨 후 입국금지 시키고, 이를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정상이 아닌가.
 
유승준이라면 우르르 몰려들어 조롱을 일삼다가도 자신이 아끼는 연예인이 이런 일에 휘말렸을 때에는 감싸주기에만 바쁜 팬덤현상을 우린 그동안 숱하게 봐왔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아이돌 그룹들의 가장 큰 문제가 병역관련 문제이니만큼, 게릴라식 공격에 익숙한 네티즌들에게도 구체적이고 일관된 잣대가 필요하며, 무조건적인 죽이기 문화는 지양해야 함이 옳다.
 
어차피 컴백을 겨냥한 수순이 아니었다면, 비록 '죄인'으로 인식되고 있더라고, 방송 후에 전체 연예인들의 병역기피 문화를 네티즌들이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식의 넓은 포용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나라 대중문화발달에 기여하는 네티즌의 몫이 아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연예인에게 뭐 그리 바라는 것이 많은가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말을 바꾸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행태를 우리는 그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사법부에서 실형을 언도받아도 그들은 자신이 정치탄압의 희생자라며 오히려 큰 소리 치기 일쑤다.
 
그리고 대중은 연예인들에 비해 사회지도층과 정치권에 비교적 너그럽게 대하며, 연예인들에게만 우르르 달려가 비난의 화살을 겨눈다.
 
일반 대중의 시각으로는 '공적 노출 = 권력'이라는 편견에 의해 연예인이라는 존재가 '권력자'의 또다른 형태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연예인이란 집단은 미디어의 시각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속성 탓에 대중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날아왔을 때 피하지도 못하며, 자신의 입장도 제대로 밝히기 힘든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  
 
이번 예에서 유승준을 스티브 유라고 지칭하며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네티즌들도 많지만, 마찬가지로 병역비리를 저지르는 비연예인들도 심심찮게 보도되곤 한다.
 
물론 방송에 노출되는 연예인이 더욱 신변관리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사회적 위치에 견주어 지나치게 높은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려 하지는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인격과 지성을 부가적으로 겸비한 연예인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비록 그렇지 못하더라도 재미와 오락적 쾌락을 선사하는 연예인 '본연의 기능'에 대중이 집중한다면, 사실상 그들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유승준의 사생활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음악, 그의 춤을 그리워하는 계층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즐거움의 욕구를 원하는 사람들을 막을 이유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나라의 병역의무에 대해 각종 이념적인 사상을 곁들이며 숱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너희들은 무조건 다하라는 식으로 연예인을 몰아붙이고, 절대로 용서의 관용을 보여주지 않은 채 주홍글씨를 낙인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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