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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 무엇을 남겼나
이전 김수현 드라마 비해 따뜻한 시각-대가족주의에의 함몰은 여전해
기사입력: 2005/06/02 [17:41]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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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칼럼니스트

따뜻한 중산층 대가족의 양면성
 
오랜 시간에 걸쳐 시청률 1위를 달리며 마침내 종방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

무엇보다 '부모님 전상서'의 특징은 주말에 볼 수 있는 가족 드라마의 성격이 크다는 점. 아울러 이전의 김수현 드라마보다 많이 따뜻해졌고 이는 이미 드라마 '홍소장의 가을'로 감지된 바 있다.

따뜻함의 중심인 가족, 그것도 대가족을 '부모님 전상서'는 전면에 내세웠다. 김수현 드라마는 기본이 대가족 혹은 가족주의의 유지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별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는 늘 대가족이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뭐길래', '내 사랑 누굴까', '목욕탕집 남자들' 모두 대가족 중심의 드라마였고, '불꽃'이나 '청춘의 덫', '완전한 사랑' 같은 멜로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공동체적인 연대나 가치보다 개인의 성공이나 부의 축적을 주제 중심으로 잡아왔다. 개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만이 존재하고 가족 구성체를 파편화시키는 드라마들이 많았고, 가족을 다룬다고 해도 가족 이기주의만이 존재하거나, 주인공의 성공의 수단이나 들러리 정도로만 설정되곤 했다.

이 때문에 많은 드라마가 식상함을 주어온 사이에 '부모님 전상서'가 더 눈길을 끌게 된 셈이다.

무모한 판타지가 드라마에도 등장하는 현실에서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안재효(송재호 분) 일가는 아파트가 아닌 교외의 단독주택에 산다. 지금 시대에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했다고는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의 신뢰를 받으며 대가족을 묶어주는 역할로 도드라진다.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인데 며느리 두명 모두가 한 집에서 같이 산다.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각의 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단지 자신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신만의 이야기들이다. 처음에는 김희애(성실 역)와 허준호(창수 역) 부부가 중심이었다.

자폐증을 앓는 아들 준이를 홀대한다는 이유로 성실이 창수를 외면하면서 창수가 바람을 피우고, 그 사실이 발각되면서 둘은 이혼위기에 이른다. 그러다, 창수가 뒤늦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준이를 따뜻하게 대하면서 회복된다.

만년 교감인 송재호(안재효 역)의 이야기와 그의 배다른 동생 김보연(금주)의 이야기, 안재효의 부인 김해숙(김옥화 역)과 며느리 둘과의 고부관계, 며느리 둘끼리의 동서관계 등이 비중있게 그려져 왔다.

김희애가 연기하는 성실 역은 자폐아 출산으로 시어머니의 냉대를 받게 되는 설정이었다. 요즘 부모들이 적잖게 고민하는 자폐아 문제를 방송 드라마에서 다뤘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고 자폐 아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지만 자폐아 어머니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리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은 아기 못 낳는 여자인데, 김보연이 맡은 금주 역시, 아기를 낳지 못해 소박맞은 역할이었다. 이를 통해 여성의 한을 대변하기도 했다.

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까?

비현실적인 내용도 억지로 설정된 극적 장치도 없다. 안재효 교감 부부와 네 자녀를 중심으로 한 일상 이야기였다. 물론 김수현이라는 브랜드의 영향력도 작용도 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라는 점에서 '우리 이야기'라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사회의 변화를 반보씩 앞서서 그리고 있는 점도 특징인데 급격한 변화나 돌출적인 상황은 자제하고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조금씩 반영하고 이끌어 갔다. 특히 가족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와 고부, 동서 관계, 여기에 각 세대의 변화를 아우르려는 시도가 보였다.

또한 드라마 속에서 해질 무렵 돌아가신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이것을 읽어 내려가게 한 것은 그 자체가 아날로그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왔다. 한쪽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우선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대가족 중심의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이순재 분) 등 김수현 드라마의 아버지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의 모습이다. '불꽃', '내 사랑 누굴까', '완전한 사랑' 등의 여주인공들도, 겉모습은 가부장을 넘어서려 하나 시아버지 등 시가족 앞에서 "여자가~"라는 말 뒤끝에는 순종적으로 바뀌거나 자포자기하고 만다.

'부모님 전상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폐아를 낳고 남편에게 외면당하는 안성실은 아버지 안교감의 설득에 결혼을 유지했다. 어머니의 역할이 좀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곳곳에서 아버지의 말에 순응한다.

김수현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은 사물과 사안에 대해 호불호가 명확하다. 이 때문에 좋아하는 시청자도 있다. 그런데 옳은 말이다 싶으면 속사포같이 상대방을 몰아붙인다. 이때 시청자들이 각각의 인물에 감정을 대입하면 통쾌해진다. 이것이 김수현 드라마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그것에서 새도매저키즘의 성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고 참다가 한꺼번에 상대방에게 쏟아내는 말투는 일종의 방어적 공격 성향이다.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이종원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했던 대사 "부숴버릴 거야"는 한때 큰 유행어가 되었고 '500년 재수'(완전한 사랑) 같은 유행어도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창수에 대한 성실의 말법이나 공격에서 두드러졌고, 각 인물들에게서 골고루 자주 이러한 성향을 나타났다. 따라서 동일시하는 시청자들을 가학적으로 통쾌하게 했다. 이는 정상적인 대화라기보다는 자기 본위의 억압된 대화법인데 이는 각 인물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 이전의 드라마들과 '부모님 전상서'가 다른 점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기존의 속사포 김수현 식 어록이 별다르게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새도매저키즘 요소가 중심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전상서' 역시 기존의 김수현 드라마와 같이 이른바 '밥순이'만 등장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여성이 학력이 높거나 사회적 지위의 여부에 관계없이 여성들은 대가족의 주부로 수렴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 반영이라기 보다는 고루하고 관념적인 드라마 틀이라는 비판이다.

사회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여성의 상은 없고 가족 속에서 희생이라는 부분에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드라마를 전개하는 것이다. 다양한 여성의 활동은 없고 가족의 틀에 묶인 구도만 반복된다.

김수현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그리는 사람은 모양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게 기분이 좋아요. 아무리 나쁜 사람도 나중엔 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제 작품의 약점이지요." 또한 "요즘 드라마가 자꾸 뒤틀리고 일그러진 인물들은 보여준다. 그게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묻는다.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을 왜 자꾸 보여줘요? 성격이 괴팍한 사람도 알고보면 다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전 나쁜 사람에게도 반드시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걸요."라고 했다.

결국 '부모님 전상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을 잔잔하게 비추어주었다. 그러한 인물들이 결국에는 한 명 한 명의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자 한 모양이다. 하지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부모님 전상서'는 나중에 이 경계가 모호해지곤 한다.

더구나 등장 인물들은 각각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거침없이 절대적인 것인 양 내쏟아 낸다. 하지만 이리저리 몇 가지 방안을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아는 체 하는 참고서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마저 없는 이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을 지는 모르지만 참고서는 사회 변화를 능동적으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한가지 더 아쉬운 것은 가족이라는 틀에서 가족주의에만 함몰되다 보면 지역과 공동체와 함께하는 드라마는 더욱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개인의 개성이나 독특한 성격은 대가족주의에 함몰되는 모양새다.

세상을 다 포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쁜 것은 분명 존재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보이거나 말싸움에 이완과 긴장을 늦추지 않지만 어느새 한쪽이 지고 들어가거나 미봉해 버린다.

따뜻함에 합일시키려고 모호함을 위해 애써 봉합하거나 모호하게 합일 하려는 것이 오히려 단점으로 보인다.

더구나 결국에는 화목한 중산층 대가족 가정만 보여주니, 가족의 해체와 그것을 일으키는 급박하고 복잡다단한 한국 가족의 현실은 먼 나라 이야기만 같다.

고뉴스 / www.g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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