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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홀대받는 서해교전의 영웅들
기사입력: 2006/07/08 [10:4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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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성 주필/시인
▲     © 울산여성신문

 
나라를 위해 순직한 분들 홀대하는 나라에서 살기 싫다며 이민 간 유족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4년째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 전 국민이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있을 때 서해교전의 함포소리가 전국을 흔들어 놓았다.

이날 오전 10시25분경 서해안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해상까지 침범한 북한경비정을 감시 중이던 우리 측 해군 고속경비정의 조타실이 바다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 것이다.
 
NLL을 침범한 북한경비정은 북측으로 퇴거하라는 경고방송을 하던 우리 고속정을 향해 갑자기 선체를 돌려 85㎜ 함포를 기습 발사한 것이었다.

99년 6월 이후 3년 만에 또다시 ‘제2의 서해교전’이 발발하는 순간이었다. 적의 불시 공격으로 우리 고속정은 제대로 대응 사격도 하지 못한 채 24명의 사상자와 실종자를 내고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그 자리에 서버렸다.

고속정 승무원들은 서둘러 갑판 위로 뛰어 올라 대응태세를 갖췄으나 북한경비정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제대로 손도 쓰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생존한 아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대파된 고속경비정은 서서히 침몰되고 있었다.

교전의 발단은 오전 9시 54분경 30여척의 북한 꽃게잡이 어선을 지도ㆍ단속하던 북한 SO1급 1척이 연평도 서방 7마일 해상에서 NLL 남측 해역 1.8마일을 침범하면서부터였다. 이에 인천 제2함대 상황실과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해군 작전사령부 등의 비상대기조는 북측 경비정의 이동 상황을 주시하면서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우리 해군 함정은 먼저 NLL을 넘은 북한경비정 1척에 대해 ‘퇴각’ 경고방송을 여러 차례 실시한 뒤 방어 기동작전에 나섰다. 10시 01분경 또 다른 북한경비정 1척이 연평도 서방 14마일 해상 NLL 남측 해역을 3마일가량 넘어오자 우리 고속정 2척이 위협 기동작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북한경비정은 우리 측 대응기동을 무시한 채 계속 남쪽으로 항진했고, 우리 고속정 4척이 이 경비정에 450여 m 가까이 근접해 계속 경고방송을 하며 한동안 고속 기동전을 계속했다.

이때 북한경비정이 그들의 장착무기 중 가장 위력적인 85㎜ 함포로 선전 포고도 없이 갑자기 기습 공격을 해왔다. 우리 고속정 1척이 순식간에 피격되자 함께 출동한 다른 고속정이 즉각 대응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인근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고속정 2척이 증강 되면서 본격적인 교전이 붙었다.

우리 고속정은 20㎜ 벌컨포와 30㎜, 40㎜ 함포로 북한경비정에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피격된 해군고속정 정장 윤영하(해사 50기) 대위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     © 울산여성신문

 
선제공격을 한 북한경비정은 인근 해상에 와있던 또 다른 경비정 1척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도주하며 우리 측에 계속해서 기관포 등으로 사격을 가했다. 10분 뒤인 오전 10시 35분경 우리 고속정 2척과 함께 해군초계함(PCC) 2척이 추가로 현장에 급파돼 도주하는 북한경비정에 수백발의 벌컨포와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 초계함의 주포인 76㎜ 함포도 연이어 불을 뿜었다. 양측이 주고받는 함포소리는 서해 해상을 뒤흔들었다.

오전 10시 43분 우리 함정들로부터 수백발의 함포와 기관포 세례를 받은 북한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시커먼 연기에 휩싸인 북한경비정은 선체가 심하게 기울어졌지만 침몰되지는 않았다. 오전 10시 50분 화력에 열세를 느낀 북한경비정들은 북쪽으로 속도를 높여 NLL 북쪽을 통과해 완전히 퇴각함으로서 교전은 일단락됐다.

아군은 적에게 공격당한 고속정의 예인 작업에 들어갔으나 대파된 고속정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군의 긴급 구조헬기가 사망자와 부상자를 싣고 국군 수도통합병원으로 향했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6월 29일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는 오전 10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남해일 해군참모총장, 서해교전 전사자 유가족 20여명과 당시 참수리 357호정 승조 장병, 함대 장병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해교전 4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그러나 올해에도 추모식이 2함대 주관 행사로 열린 탓인지 윤광웅 국방부장관과 남해일 해군참모총장만 참석하였지만 추모사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4년째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서주석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김근태 열린 우리당 의장, 김영선 한나라당 대표, 장상 민주당 공동대표, 손학규 경기지사, 안상수 인천시장 등이 참석하여 이들의 넋을 기렸다.

나라를 지키려고 젊은 목숨이 6명이나 해전에서 산화했는데 어떤 까닭으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같은 최고위층의 참석이나 조사가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4년이 지나도록 없는 것인지 그 이유를 국민들은 궁금해 한다. 그까짓 젊은 목숨 6명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하여 오지 않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냥 젊은 목숨이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 전사한 대한만국의 전몰군인인 것이다.

그들은 전사를 했으면서도 북의 눈치를 보는 이상한 기류 때문에 정당한 장례대우도 받지 못했고 그들의 가족들은 이러한 조국을 위해 죽어간 자식이, 남편이 억울하다며 항변했다. 심지어 이러한 조국이라면 조국에 살기 싫다며 이민을 떠난 전사자의 가족도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가도 불현듯 부아가 치민다. 이런 식으로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푸대접한다면 어느 누구가 나서서 내 조국을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나서겠는가?

이날 2함대 사령관인 김중련 소장이 기념사에서 “당신들은 적의 기습공격에 마지막 남은 한 발의 함포와 총탄까지 모두 소진하면서 대응공격을 하면서 우리의 바다를 지켜냈다”며 “먼저 가신 전우들의 위국 헌신의 희생정신을 높이 받들어 어떠한 경우에도 적의 도발을 격멸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말이 왜 공허하게만 들리는지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은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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