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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울산탐방 - 조개섬
지금은 흔적도 없어진 삼각지 조개섬
기사입력: 2006/04/17 [15:0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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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성 주필.시인

▲ 조개섬이 있던 자리, 부슬비가 오는 날에 찍어 흐리게 보이지만 강 건너편에 현대자동차가 보인다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울산에서는 새벽녘이나 점심식사 시간대에 길거리에서 들리는 “재첩국 사려!”라는 제첩국 장사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독에 제첩국을 담아 보온을 위하여 독을 두꺼운 천으로 감싸고 그 독을 이고 다니면서 제첩국을 팔러 다녔었다.

이들이 끓여서 파는 제첩국은 먼데서 채취한 것이 아니라 태화강에서 채취한 재첩들이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점심나절이면 간밤에 술에 주눅이 들어 쩔쩔매던 샐러리맨들은 이 제첩국 아줌마의 “제첩국 사려!”란 소리를 학수고대하다가 이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뛰어나가 아줌마를 사무실로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그릇 정도는 가뿐히 마셨던 제첩국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재첩국사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유인즉 태화강이 오염되어서 더 이상 재첩을 채취할 수가 없어서 자연히 그 체첩국도 명맥이 끊어졌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재첩을 채취하는 배는 하루에 두 번씩 태화강을 가르며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 깊지 않은 강이었기에 노 젖는 것을 장대가 대신하여 장대로 강바닥을 밀면서 태화강을 오르락 내리며 재첩을 채취했었다.
 
이 배가 다니는 코스는 현재 태화다리에서부터 그 당시 조개섬으로 불리던 태화강 하류의 삼각지이었는데 그 조개섬은 이름 그대로 조개가 많이 채취되던 곳이었다.

조게섬의 위치는 아산로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부근이었고 돗질산이 있는 앞강에 조개섬이 있었다.
 
현재는 이곳의 물이 맑아졌다고 하지만 그 당시의 깨끗한 강물에야 비유될 수가 없지만 이 조개섬에는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와서 손으로 조개를 캐기도 했고, 여름철이면 더위를 식히려고 이곳을 찾았다가 덤으로 조개를 한 아름씩 채취하여 가는 즐거움도 누렸던 곳이었다.

필자는 여름철이면 한두명의 친구들과 소주 몇 병을 허리춤에 꿰차고는 낚싯대를 들고 이곳 조개섬 주위를 찾아갔었다.
 
낚싯대라고 하지만 요즘처럼 낚시점에서 파는 낚싯대가 아이었고 태화강변에서 꺽은 긴 대나무에 흰 실에 낚싯바늘 하나를 달랑 달았고 찌는 한 뼘이나 되는 가늘은 나무토막을 달아서 낚시를 했는데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찌가 자꾸 빠져나가면 찌가 없는 상태로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물면 대나무가 순간적으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은 신호가 오면 그대로 낚아챈다. 그러면 낚시대에 고기가 한 마리 물려오던 원시적인 낚시였지만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낚이는 고기의 대부분은 꼬시락이었다. 막 잡은 꼬시락의 비늘을 대충 벗기고 엄지손가락으로 꼬시락의 배를 따고 창자를 꺼낸 후 강물에 대충 휘휘 흔들어 씻고는 소주 한잔을 마시고 초장에 그 꼬시락을 푹 찍어 입에 넣으면 그때까지도 살아있던 꼬시락의 꼬리가 입천장을 탁탁치는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놀다가 해가 뉘웃뉘웃 기울 무렵이면 우리들은 낚시를 접어두고 조개섬으로 올라가서 조개를 잡기 시작한다. 워낙 손만 모래바닥에 밀어 넣으면 손에 집히는 조개라서 얼마 아니면 조그만 봉지에 조개를 가득 담아서 수건에 그 봉지를 둘둘 말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어머니께 던져주며 제첩국을 끓여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취직할 생각은 않구 허구한 날 조개만 잡아오면 묵을 것이 생기나” 하시면서도 맛있게 제첩국을 끓여 주시던 기억이 새로워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이 조개섬 앞에 있는 돗질산은 우리들이 어릴 때 보기에는 제법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있었는데 돗질산 아래에는 굉장히 큰 못 같은 곳이 있었고, 둑 밑으로는 시내 쪽의 농수로에서 흘러오는 물을 강으로 흘러 보내는 갑문이 있었는데 이곳도 항상 꽤 깊은 물이 차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낚시도 하였는데 일반 낚시에는 붕어가 잘 올라왔고 개구리를 잡아 개구리의 다리에 큰 낚시를 꿰어놓고 개구리를 물에 방류하면 이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 다닌다. 이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가물치가 보고 먹이로 덥석 삼키면 그 가물치는 낚시에 걸려 꼼짝없이 잡히곤 했는데 큰 놈은 우리들의 팔뚝만 한 것이 잡히기도 하였다. 그 수로 건너편 못에는 그 당시만 해도 백로가 떼를 지어 날아다녔는데 길이 험하여 우리는 이곳 못에는 접근을 하지 않았다.

이 돗질산은 우리들이 초등학교 때에는 소풍을 자주 가던 산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곳 돗질산은 잘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달리 독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어떤 친구는 살모사가 나무에 똬리를 틀고 새끼를 낳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필자는 한 번도 그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그 당시의 돗질산에는 사람들은 거대한 뱀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용이 되기 전의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둥 여러 가지 야설이 돌았는데 그 원인으로 비가 오려고 날씨가 흐리면 돗질산이 우는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어른들은 이야기 하였다.
 
어떤 흐린 날에는 아버지가 “야야 잘 들어봐라 저 소리가 돗질산이 우는 울음소리인기라”하며 조용히 돗질산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라고 하셨지만 내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째 들리제?” 하고 내게 물으시면 그냥 건성으로 고개만 꺼떡거렸을 뿐 나는 한 번 도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훗날 돗질산 밑자락에 한국비료 공장이 들어서고, 이 돗질산에 그 당시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이병철 회장의 별장을 이곳 돗질산에 지으려다가 갖가지 기괴한 경험을 당하게 된다.
 
일설에는 이 산의 자락을 허물던 포클레인 기사의 꿈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서 공사를 당분간 연기해 줄 것을 호소하였는데 그 포클레인 기사가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자 흙 한 자락에 핏물이 나오면서 그 포클레인 기사가 급사했다는 소문 이 한동안 울산에 나돌기도 했다.
▲    태화강 하구에서 재첩잡이와 통발을 걷고 있는 어민(1970년대

그 외에도 그 별장공사를 재개하면 갖가지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이병철 회장의 몸이 공사를 재개하면 영락없이 아파서 도중에 별장공사를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나돌아 우리들이 확인을 해봤는데 정말로 공사는 중단되어 있었고 짓다가 완공을 보지 못한 별장에는 관리인만 지키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난 뒤에는 우리들도 그 구렁이의 전설을 믿게 되었는데 최근 이 산의 근황은 잘 몰라도 그 별장은 아직도 흉가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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