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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포트라이트
내공 강한 조용한 예인 박숙현, ‘추모제’를 통해 모두의 가슴에...
故 박숙현(예인제 원장. 경서도민요 무형문화재 19호 전수자)
기사입력: 2014/08/21 [14:3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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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우리 어르신들한테는 박숙현 원장님은 정신적 기둥 같은 분이었는데...”
“소리꾼들은 자신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며 낮은 자세로 엎드려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아주 특이한 추모공연이 8월7일 두동 연화요양원에서 열렸다. 돌아가신 박숙현 원장을 추모하는 추모제였는데 ‘예인제 공연’ 이란 이름으로 하는 마지막 공연이었다. 이 날은 재단이사장 보연스님의 눈물어린 추도사로 시작된 고인에 대한 추모는 평소 그가 16년을 매월, 단원들 표현에 따르면, 한 번도 빼지 않고 두동 연화요양원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공연을 해왔던 곳이어서 평소와 같이 공연을 하게 됐다고 했다.

오늘의 주인공 박숙현 원장은 내공이 강한 조용한 예인이었다. 고인이 된 지 30여일, 주위에서는 그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아 재수술을 받은 4월까지 그는 소리를 했고 봉사를 계속했다. 요즘 보기 어려운, 진정한 소리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2013년 12월 어느 날 주위의 추천으로 그를 만났을 때 꾸밈없고 담백한 성품이 한송이 흰 목련같다고 생각했는데..역시나 그 목련은 하릴없이, 미련 없이 세상을 등졌다.

그 좋아하던 소리는 어쩌고 훌훌 털고 가 버렸을까? 드러내지 않고 겸손되이 예인의 길을 닦고 있던 그였다.
 
보연스님은 그를 일러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선이 간결하고 깨끗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진실한 사람인데, 특히 어르신들한테는 더욱 그러했다”며 “이런 착한 본성을 가지고 보시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빨리 허망하게 가야만 하는지...가슴이 아픕니다”고 그를 아쉬워했다.

이 날 그를 보내는 마지막 공연은 눈물바다였다. “우리 어르신들한테는 박숙현 원장님은 정신적 기둥 같은 분이었는데...” 요양원 원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추모공연은 보연스님의 추도사에 이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낭송됐으며 살풀이 춤과 입춤으로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생전의 고인 공연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잘 가라는 작별을 고했다. 
 
신은 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빨리 데려간다는 말처럼 그의 지순함이 필요해 빨리 데려 가신걸까? 그의 제자들과 지인들은 아쉬워한다.

“올 1월에 무형문화제에서 인간문화제로 지정, 최창남 선생과 이은관 선생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는데...기쁜 것도 잠시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그토록 좋아하던 소리를 계속 하기를 바랍니다. 저야 박숙현 선생의 유지대로 죽을 때까지 연화요양원 봉사를 계속하라는 말을 지키려고 합니다” 함께 봉사를 해오던 처용기획단 박성표 단장의 말이다.

한 우물만 파는 외유내강의 소리꾼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평소에도 나서는 일 없이 자신의 실력닦기와 후진양성에 정진해왔다. 경서도민요의 무형문화재 19호 전수자이면서 10여년을 한결같이 서울로 다니며 수학해온 터였다.

▲ 故박숙현 원장     ©UWNEWS
평소 그는  ‘좋은 소리를 내기는 힘들어도 소리를 듣고 평가하는 것은 수십 년의 경력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래서 소리꾼들은 자신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며 낮은 자세로 엎드려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래서 그의 문하생 20여명은 오랜 시간 박숙현 선생에게 사사 받아왔다.  어쨌거나 이 시대 맑고 바른 심성으로 소리를 좋아했고 후진을 양성해온 한 아름다운 소리꾼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제자들은 말한다. “10년을 곁에서 공부했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소리를 사랑하셨고 정진하셨습니다”

“후두까지 암이 번져 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봉사와 소리를 멈추지 않으신 분입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진정한 소리꾼이 되기 위해 노력해 갈려고 합니다만 등대가 없어진 것처럼 캄캄합니다” 제자들의 슬픔에 겨운 말이다.

바로 작년 년 말 예인제에서 아리랑을 부르던 그 청아한 소리와 고운 자태를 이제 어디서고 만날 수가 없다. 그러나 소리와 어르신을 섬기던 그 고 운 마음씨는,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아련히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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