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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세계 위안부의 날
기사입력: 2014/08/07 [15:2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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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원기자

절대로 알아야 하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
많은 증거들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증명하고 있으나 일본만 외면


▲ 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 있는 김학순 할머니상     © UWNEWS
“저는 일본군에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힘겹지만 당당하게 꺼낸 첫마디였다. 1991년 8월 14일, 일흔을 목전에 둔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에게 집중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뉴스와 신문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일본정부의 위안부 부정과 왜곡에 이대로 있을 수 없어서, 말할 수밖에 없어서 스스로 이 자리에 나왔노라고 했다. 할머니는 내 인생이 하도 원통해서 어디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며 일본정부를 향해 제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내가 바로 증거라며 일침을 놓았다. 이 날은 처음으로 일본의 성노예 피해자가 증언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었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정한 ‘세계 위안부의 날’이다. 이 날은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증언한 날이기도 하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생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렸고 위안부의 실상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할머니들의 용기에 곳곳에서 힘을 보탰고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각종 모임과 일본정부를 향한 소송, 국제연대로 이어졌다.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위안부 피해문제는 일본의 공식사과와 배상 등으로 곧 해결될 것 같았으나 2014년 8월 현재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다. 1993년에 발표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인 고노담화를 아베 내각은 한·일 정부 간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며 고노담화 흔들기에 나서는 등 위안부 문제에 관해 오히려 퇴보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세계 곳곳에서 피해자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만 모르는 진실이라는 비아냥이 일본정부를 향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피해자들과 일본군 장병의 증언

일본 정부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어 하는 위안부 강제 동원에 관한 가장 확실하고도 강력한 증거는 피해자들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후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대다수가 강제로 끌려갔고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갔으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한 채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살아야 했음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야 말로 당시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명백한 증거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당시 일본군 장병들의 수기와 증언도 적지 않다. 그들은 당시 위안소 생활과 위안부 여성들의 상황이 비인도적이라 느끼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고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관동군 군대 일기, 싱가포르의 길 - 어느 근위병의 기록, 한커우 위안소’ 등 다수의 책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직접 피해자인 위안부 여성과 당사자인 일본군 장병들의 증언은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위안부가 강제로 동원되었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으며 당시 법률상으로도 불법적인 범죄였다는 사실이다.

공문서에 기록된 위안부 강제성

일본군과 정부의 공문서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 관리에 군과 정부가 관여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일본 중앙대)가 일본 방위청 도서관에서 발견한 육군성 문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문서는 위안부 모집 시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중국 파견 일본군이 위안부 징집 업무를 통제하고 업자 선정에 보다 철저를 기할 것을 육군차관이 지시했음을 보여준다. 이 문서 공개 이후 일본 정부는 태도를 바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일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46년 네덜란드군 정보부대 장교가 작성한 문서에 “일본군 헌병대가 인도네시아 거리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잡아들여 위안소에 수용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는 위안부의 폭력적 강제 징집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1945년 4월 중국 쿤밍엣 작성된 미 정보부대 보고서에도 “23명의 여자들은 명백히 강요와 사기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현황을 보면 237명 가운데 2014년 8월 현재 생존자는 54명이다. 살아생전에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던 피해 할머니들의 다수가 일본 정부의 사과를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남은 생존자들은 모두 고령의 노인들로 할머니들의 말처럼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조급해 해서는 안 되지만 지체할 시간도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정부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급격한 태도변화는 요원할 터이나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고 하지 않던가. 끊임없는 사과 요구와 진실을 향한 지속적인 발걸음이 우경화에 빠진 일본이라는 바위를 뚫는 물방울이 될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과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처를 가진 우리에게 김학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앞으로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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