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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 별세, 이를 통해 되돌아본 위안부 문제
피해자 237명 중 54명만이 생존...일본의 입장은 여전히 '책임 없다'
기사입력: 2014/06/11 [15:1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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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WNEWS
6월 8일(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가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 측은 “8일 오전 5시 할머니가 노환으로 운명했다”고 밝혔고 이로서 정부의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이제 54명(국내 49명, 해외 5명)만이 남게 되었다. 나눔의 집에 생활하는 위안부 할머니의 현재 9명이며, 대부분 80,90대 고령자로 알려져 있다.

故배춘희 할머니는 경북 성주가 고향으로 1942년 19세 때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정신대를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고 ‘성노예’인지는 알지 못한 채 단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친구와 지원했고 중국 만주로 끌려가 4년 간 위안부로 생활했다. 광복 후 귀국했으나 국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아마추어 엔카 가수로 활동하며 힘들게 지냈다. 1980년에 다시 귀국했지만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다 잃었다. 다행히도 1993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대상자로 등록되어 1997년부터 현재까지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편,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꼬박꼬박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 집회에 참석해왔다. 수요 집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하고 선거일인 지난 4일에 제1129차 시위를 했다.
 
일본군 위안부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뜻한다.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은 여성들이 군위안부로 동원되었으며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 한국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광범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로 1990년 11월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발족되었으며 이듬해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대책으로 공동생활공간인 ‘나눔의 집’, 이외에도 다양한 민간 활동 기구가 만들어져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 상황은?

배 할머니의 별세로 정치권에서도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신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며 일본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통렬한 반성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금태섭 대변인도 논평에서 “오랜 세월 고통을 겪은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며 “일본은 더 늦기 전에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외 상황은?

국외에서는 각국의 피해자들이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6월 2일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중의원 제1회관에서 열린 ‘제12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 참여, 전쟁 중 경험에 대해 증언했다.

필리핀 출신 에스텔리타 바스바뇨 디(84) 씨는 “일본군이 자신의 머리채와 팔을 붙잡아 트럭에 태우고 갔으며 차 안에 이미 복수의 여성이 타고 있었다” 고 납치당하다시피 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는 일본군 병사가 자신의 머리를 탁자에 찧었고 여러 명의 병사에게 강간당하는 상황을 반복해 겪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또 강제 연행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관해서는 “완전히 거짓말이다. 내가 바로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 이용수씨(86)는 밤중에 집으로 찾아온 일본군에게 끌려간 경위와 일본군 방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가 전기고문을 비롯한 각종 고초를 겪은 사실을 증언했다. 이씨는 “일본이 찾아와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연대회의에서는 일본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 정부 및 일본군 개입을 인정하고 배상과 사죄 등의 조치를 조속히 취하라는 내용의 제언을 내놓았다.
 
일본의 입장
피해 여성들,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 5월 15일 한국과 일본 외교 당국 간에 국장급 협의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 정부의 해결책 요구에 일제 강점기에 동원돼 강제 노동을 한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존의 입장만을 고수할 뿐이었다.

한일 청구권 협정이란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 간에 일반적 국교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조약으로 이 조약의 제 2조 ‘한일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청구권협정’ 에 양국 간의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 문제가 이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소명된다고 규정되어있다. 일본은 이 협정을 내세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배상책임은 종결되었다며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배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단 54명만이 남았다. 남은 피해자들도 대부분 고령이라 시간이 많지 않다. 국제사회의 비난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태도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일본은 고립되어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피해자들의 슬픔을 덜어드려야 할 때이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를 잊어서도 안 된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과 꿈을 잃어갔는지 빠짐없이 기록하여 후대에 남겨야 한다. 결코 배춘희 할머니의 고된 91년의 삶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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