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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준의 차차차
OBD와 인바디(11)
기사입력: 2013/11/14 [14:2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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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준 현대해상 해강대표 / 전 서라벌대 자동차과 겸임

▲     오용준
현대해상 해강대표 / 전 서라벌대 자동차과 겸임교수
현대자동차의 미국진출 역사를 보면 정말 파란만장하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자동차 시장의 일년 판매량이 57,106,100대인데

미국 16,967,442 대 전체시장의 30%, 일본 4,460,019 대 7.8%, 중국 4,390,806 대 7.7%, 한국 1,337,706 대 2.3%로 미국이 세계시장의 3분의 1 정도다. 사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1976년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만들고 10년 후인 1986년 현대차는 액셀을 만들어 미국시장에 진출한다.

한해 16만대를 넘게 팔았고 1987년 다음 해에는 26만대를 파는 놀라운 성과을 거뒀다. 그러나 품질과 서비스가 뒷받침이 되지 않은 판매로 1988년에는 판매량도 10만대 이하로 떨어졌고 1989년에 캐나다에 건설한 쏘나타 공장도 판매부진으로 6년 만에 철수해야 했다.

그 당시 미국과 세계 언론은 한국 차는 품질이 좋지 않고 서비스가 나쁘다는 평판의 기사로 한국 차는 값싸고 저급차라는 이미지로 상당히 나빴다.

그 이미지를 깨기 위해 1989년 쏘나타를 수출하고 이어 1991년 아반테를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수출을 한다.

거의 다른 차종은 동력 파워 계통의 보증기간이 4-6년에 4-6만 마일인데 비해 현대차를 10년 10만마일이라는 획기적인 발표를 한다.

필사의 노력으로 현대차의 평판이 올라가고 2003년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 리포트 품질조사 현대차 2위, 2004년 미국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 신차 품질조사에서 도요다에 이어 2위를 발표했을 때 당시 미국 언론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 (man bites dog)” 는 표현을 써가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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