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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준의 차차차
헤드라이트와 눈(11)
기사입력: 2013/07/02 [11:5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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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준 울산여성신문 필진회 회장(현대해상 해강대표)
헤드라이트와 눈(11)

▲ 오용준 울산여성신문 필진회 회장(현대해상 해강대표)     ©
사람의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도 한다.
금강경에 신심청정 즉생실상 심해의취 (信心淸淨 卽生實相 深解義취)라는 이야기가 있다. 마음이 청정하면 바로 실제의 상이 보이고 실체가 정확히 파악이 되면 나의 양심의 갈 바가 깊이 해결된다고 하였다.

 사실 사물이나 문제의 실체는 하나인데 보는 눈에 따라 내리는 결론은 수없이 많다. 눈을 통해 사물이 망막에 저장이 되어 머리로 보내져 해석을 하는데 해석하는 마음이 다르다.
그러니 마음이 청정해야 실상이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즈음 살다 보면 눈도 피곤하고 마음도 산란하고 거기다 본인의 욕심까지 쌓이니 진실은 이러한데도 엉뚱한 결론으로 더더욱 세상을 혼돈스럽게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용서를 한다고 할 때 한자로 恕라는 한자를 쓴다.
논어에 자로가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님 평생 살면서 한마디만 해야 된다면 어떤 말을 써야 됩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님의 대답이 용서서라고 했다.
용서서(恕)의 글자를 보면 같을여(如)+마음심(心)의 合字다.
글자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이다.

 한 가지 사물을 가지고 내리는 결론은 다 다르다.
근시, 원시, 난시에 따라 결론이 다르고 현미경을 갖고 보느냐 망원경으로 갖고 보느냐 따라 다르고 같은 현미경이나 망원경이라도 배율에 따라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사람의 눈으로 보느냐 동물이나 곤충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게 비칠 수 있다.
사실 사물의 실체는 그대로 인데 보는 눈이 다 다르다.
눈이라고 다 같은 눈이 아니다.
그런 사실을 이해해야 남의 결론에 인정을 하고 용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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