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문모근
굶주림으로 경종 울린 한 예술가의 죽음
기사입력: 2011/02/14 [14:48]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문모근 시인/편집위원
 
▲   문모근 시인/편집위원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땅에서 ‘최고은’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시나리오 작가 한분이 살다갔다고 한다. 숨을 거둘 때 그녀는 고작 서른 둘, 삶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녀는 단편영화의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밥벌이를 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얼마나 좋은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가 죽은 뒤 쏟아져 나온 언론 보도를 통해 그녀가 <격정 소나타>의 감독이었으며 이 영화가 지난 2006년 제4회 아시아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며 그녀가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또 누군가 일찍 죽을 수도 있다. 우리를 새삼 놀라게 하는 것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던 그녀가 ‘굶주린 채’ 죽어갔다는 점이다.

“그동안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이것은 그녀가 이웃 주민의 집 대문에 남겨놓았던 쪽지의 일부라고 한다. 저 글귀 중에서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와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사이에 무언가의 말이 빠진 듯 어색하다. 고인에게 누(累)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저 말들 사이에 “너무 배가 고파요!”라는 말을 넣어주고 싶다. 어쩌면 저 말이야말로 그녀가 정말 외치고 싶던 외마디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해 어느 문학잡지에 작품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원고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잡지사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원고료를 대신해 정기구독을 받으라는 이야기였다.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고료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잡지를 계속 보내온다. 그러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도착하는 그 잡지를 보면 반가움에 앞서 씁쓸하고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잡지가 어떤 악의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이것을 ‘관행’이라고 일컫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올해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잡지사에서 보낸 원고청탁서의 일부를 소개한다.
“원고료는 ○회 ○○원입니다. 지금까지는 연재가 끝나는 시점에서 원고료를 드렸는데요, 각 호마다 원고료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원고료 지급하는 데 참고하겠습니다.”

얼마 안 되는 원고료를 받기 위해 잡지사에 쭈뼛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통장에 매달 입금하겠다는 저 말이 참 고마웠지만 오늘에 이르러 최고은 감독의 죽음 앞에서 그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 한편, 잡지사의 형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본다. 잘은 모르지만 인쇄비나 유통(배송)비를 제외하면 1만원 남짓한 잡지 값에서 수익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원고료를 정기구독으로 대신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일 게다. 또 이러한 궁핍한 현실 때문에 우리의 적잖은 잡지들이 동인지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은 더하다. 지방신문이나 지역문예지는 작가의 원고료는 본래 없었다고 하면서 지면에 발표해 주는 게 얼마나 큰 특혜를 주는 것이냐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 실태에 분개한 문학단체는 작품을 연재하지 말자는 회원간의 결의를 맺기도 하지만 일부 몇몇의 일탈회원 때문에 그마저도 공염불이 되고 만다.

이게 문학계의 현실이다.

오늘날 예술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예술은 꽉 막힌 우리 출근길을 뚫어주지 못한다. 또 수출되는 물류의 운송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도로를 닦고 강에 보를 쌓는 일이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줄 수 있을까?

얼마 전 세상을 등진 고(故) 박완서 선생님께서 죽음을 예비하여 남기셨다는 말씀을 다시 되뇌어본다.

“문인들은 돈이 없다.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