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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명절의 끝 이야기
기사입력: 2011/02/14 [14:4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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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건영화학대표/국제 pen문학회원
 
▲   김의도 건영화학대표/국제 pen문학회원
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전공을 살려 자신의 일을 하는가 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미국유학을 가겠다고 졸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먼길 떠나던 날 밤늦은 시각에 구석진 자리에서 눈물의 이별기도를 드리고, 초등학생 몸무게나 될 듯한 큰 가방 두개를 끌고 그렇게 어려운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그 후 몇 차례나 뉴욕을 드나들며 조우했으나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힘들기만 해서, 이국 만리에서 겪는 딸아이의 고생을 생각하면 기내 식사도 할 수 없었고, 잠들지도 못해 여행은 때로 슬프고 우울하기도 했다.

달 밝은 밤에는 달을 쳐다보며 안부를 묻기도 했고, 바닷가에 서면 먼바다 저편에 딸 아이가 있을 아메리카 대륙을 떠올리며 이름을 불러 보기도 했다.

딸이 기거했던 방문 앞을 지날 때는 애써 외면하면서도 흘깃 방안을 훓기도 하고 괜시리 옛날에 입고 다녔던 옷가지들을 매만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들까지 뉴욕으로 누나를 따라 유학을 떠났을 땐 정말로 세상 살맛이 나지 않을만큼 황량한 집이 되고 말았다.

세월은 흐르고 딸은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십여년 머문 끝에 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자랑도 아니고 욕도 아닌 이야기다.

딸은 2~3일에 한번씩은 빠지지 않고 전화를 걸어온다. 전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항상 밝고 명랑하다. 때론 괴로운 일도 있겠지만 항상 밝은 목소리로 부모를 위로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일만큼 노력하는 게 느껴진다. 부모가 기침만 해도 거기에 적당한 보조식품이 날아오고 때마다 이벤트를 만들어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지극 정성을 쏟는다.

아들도 전화는 걸어오지만 가끔이다.  일주일마다 그저 정기여객선 시간 맞추듯 일정한 시간에 비슷한 내용의 안부를 전해온다. 부모는 으레 그런 줄 알면서도 감지덕지 조심스럽게 안부를 접어 보낸다.

딸은 명절이 아니라도 자주 내려와서 엄마를 돕는다고 부엌에 산다. 20년이 넘도록 피아노를 두들겼지만 젓갈 김치도 잘 담고 청소도 열심히 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시간에는 옛날 공항의 이별처럼 슬프지 않지만 언제나 “짠”하다.

딸은 약하지만 강한 구석이 있고 가늘어 보이지만 질긴 데가 있다. 딸은 호적을 파서 떠나간 출가외인이 되었지만 그건 물리적인 변화일뿐 본질은 항상 그대로인가 싶다.

가끔 생각해 본다. ‘훗날 늙어서 죽을 때 화장을 할까 매장을 할까?’
딸이 슬피 울것 같아 화장이 망설여 지기도 한다.

딸은 엄마와 전화기를 들면 한시간씩이나 무슨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아들은 길면 5분 안에 끝이 난다. 며느리도 여자인데 며느리하고는 할말이 별로 없다. 그래서 제일 멋진 가정은 딸 같은 며느리가 있는 경우 일것 같다.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고,  이 방패는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모순”(矛盾) 이라 부른다.

내 딸이 남의 집 며느리이고 내 며느리가 남의 집 딸이라서 문제이다. 나의 며느리가 맨날 친정에다 정열을 쏟는다면 그것도 문제이고 내 딸이 시집에 소홀하다면 그것 또한 안될 일이다.

모든 운동경기에 있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모두에게 좋은 일을 찾기가 쉽지 않고 강자나 약자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반드시 운동경기와 같지 않기에 시집에도 잘하고 친정에도 잘하는 딸이어야 할 것이고, 처갓집이나 본가에도 잘하는 아들들이 되었으면 한다.

집집마다 잔잔한 칭찬과 흉꺼리를 만들며 명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별것도 아닌 일일 것 같은데 명절은 이래저래 피곤한 에피소드들을 남기고 또 한 장의 드라마로 지나가게 된다.  

조화(harmony)를 이룬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구나. 그래도 세상의 아들과 딸들은 끝도 없이 노력해야 할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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