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의도
폼생폼사
기사입력: 2010/12/14 [09:38]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의도 건영화학대표/국제 pen문학회원
 
▲   김의도 건영화학대표/국제 pen문학회원
의대에서 수년간 공부를 마치고 드디어 개인병원을 차리게 된 초보의사가 있었다.

한나절 파리를 날리다가 몹시 지루하던 차에 누군가 진료실을 열고 들어왔다. 첫 손님인지라 기쁜 마음이 앞섰지만 그는 초보임이 들키기 싫었다.

간호사도 한명 있고 해서 잔뜩 체면도 구겨져 있던 터에 잔머리를 굴려 아직 개통도 되지 않은 전화기를 들고 괜히 바쁜 척하기 시작했다.

무려 10분씩이나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전화하는 척을 한 후, 기다리던 손님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종합병원에서 자문이 들어와서...., 어디가 아파서 오셨죠?”

그러자 손님이 말했다.

“저는 전화 개통하러 온 전화국 직원인데요.”

의사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겠다.

한가하면서도 바쁜 척 해야 알아주는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가하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 만도 아닐텐데, 왠지 좀 쑥스러운 건 사실인가 보다.

요즈음 연말이 다가오면서 바쁜 사람이 꽤 많은 듯 하다.

“바쁘시지요? 송년회는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라는 물음을 들을 때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도 있다. 축소해서 말하자니 별 볼일 없는 사람 같아서이다.

50% 세일하는데 가서 사 입을 옷을 누가 얼마짜리냐고 물으면 원래의 값을 얘기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비싸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겠지... 그래야 잘 나 보이니까 말이다.

옛날 학생 때 개봉극장의 절반 값인 재개봉 극장에 가서, 그것도 복도에 신문지 깔고 앉아서 본 영화를, 대한극장에서나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았다고 자랑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말기암을 숨기고 큰소리치며 살다가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 못내 서운하지만 살아있을 때 항상 당당하게 굴던 모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동물들은 싸움을 할 때 곧잘 덩치를 크게 만들어서 상대를 제압하려 든다. 닭은 털을 세워 사납게 달려들고, 사자도 개도 심지어 사람도 그렇다.

왜소해서 약하게 보이는게 싫고, 가진 게 없어 업신여김 당하는 게 싫고, 무식해서 무시당하는 것은 더욱 싫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고, 혼자 있는 게 싫어 떼 지어 다니고 할 수만 있다면 몰려서 다닌다. 오라는 데도 없고 굳이 갈 데가 없어도 바쁜 척하며 살고 애초에 없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뛰듯이 살아간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한없이 슬프고 멀리서 보면 우습다”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멀리서 보듯 살아야 할 것이다.

산도 숲도 사람도 멀리 있을 때 아름답듯이 사람도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면 잘 난 사람이 없다. 콧구멍 사이로 비집고 나온 콧털도 보이고 웃을 때는 땜질한 치아도 다 보여서이다.

떨어져 있을 땐 그렇게 멋진 신사였어도 자주 만나다 보면 치사한 부분도 어쩔 수 없이 보이게 된다. 그러기에 십년씩이나 연애를 했어도 결혼한 지 일년 만에 헤어지는 인연도 보았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이라고, 마주보면 너무 많이 너무 자세히 보여서 실망하게 된다는 뜻이겠다.

아무리 멋져 보여도 자주 보고 가까이 있으면 지치게 되어 시들해 버리기 때문에 친한 사이라도 조금은 간격을 벌려두고 사는게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도가 지나치지 않은 범위 안에서, 적당히 폼생폼사 하며 외로워도, 가진 게 없어도, 무식해도 바쁜 척 아는 척하며 살아가는 우리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며 긍휼히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얼마나 힘들기에 포장을 해가며 살아가겠는가. 사실은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는 사람들은 조금 불쌍한 사람들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 앞에서 너무 잘난 척 바쁜 척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