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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근
‘줄서기’에 목숨 건 사람들
기사입력: 2010/05/17 [16:41]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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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근 시인/편집위원
▲    문모근 시인/편집위원
엄마 품에서 아장거릴 때가 좋았다는 사람이 있다.
엄마 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가 더 좋았다는 사람도 있다.

유아원에서 낯선 환경에 몸서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던 때. 유치원에서 또래 아이들과 한글을 배우고, 숫자도 배우면서, 가끔 남의 나랏말 영어도 얻어들으면서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그 날부터 줄서기가 시작됐다.

'선생님이 하는 대로 서 보세요. 자, 잘하지! 앞으로 나란히!'

유아원 때는 잘 몰랐지만 유치원에서 자주 들었던 '앞으로 나란히!'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는 창피하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란히는 잘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더 그렇고.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오면서 몸에 익어버린 것이 있었다.

'줄서기!' 수업시간을 마치면 다양한 힘의 줄기 아래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줄서기를 해야 했다. 그저 평범하기는 싫었으므로. 줄을 잘 서면 가끔 떡이 생기곤 했다. 팥고물이 든 맛있는 시루떡. 붉은 팥으로 몸피를 덮은 것이다.

떡을 먹으면 그 맛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머리가 숙여지고, 가방을 들어 주었다. 함께 있으면 어딘지 든든했고.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을 들어갔지만 사회구조가 그 때부터 틀어지기라도 했는지, 짧은 지식으로 사회경제가 어떻고, 국가정의가 어떻고, 청년실업이 어떠한지를 따지며 종주먹을 흔들기도 한다.

그렇게 사회를 알게 되면서 또 다른 형식의 '줄서기'를 경험하게 된다. 사회라는 조직의 두 가지 색깔을 견주어 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마주서게 되는데, 잠시 잠깐 있는 조직의 맛을 본 경우의 줄서기는 치열하다. 허름하고 없는 조직에 발을 들였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맛이 있는데, 없을 때는 포기하기도 쉬웠고, 체념도 쉬웠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기도 몹시 쉬웠고, 어려운 사람끼리 나누는 막걸리도 매우 맛있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워낙 있는 조직의 매력이 커놔서 권력과 힘의 중심세력에 가까워졌을 때의 통쾌함과 지배자의 주변에서, 혹은 결정권을 쥐고 있을 때의 조명발을 잊지 못한다.

하여 조금이라도 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생각에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축축한 악수를 나누면서 한껏 웃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야 다음의 내 자리가 안전하므로.

요즘 6.2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선거사무소가 연일 개소하면서 평소에는 발길을 전혀 하지 않던 면면이 보인다. 물론 생업에 바쁘고 사회활동이 많은 사람들이라서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요란하게 광고한 선거사무소 개소식만큼은 꼭 참석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찾아온 것이다.

'흠. 내가 와서 악수를 했으니, 내 표가 얼마라는 것쯤은 잘 알 것이고..., 이제 나한테 도와달라는 연락이 참모로부터 오겠지. 그럼 마지못해 도와주는 척 하면서, 좀 생색을 내고... 별도로 만나야 되겠지? 암, 암. 그 자리에서 내 역량을 잘 보여주고, 내 자리가 보전되거나 좀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무언의 교감을 나누어야 되겠지. 물론 내 사업도 더 나아져야 되겠지. 그래야지. 암.'

줄서기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의 속내를 유추해 보았다. 평소 방송이나 신문의 정치사회면을 장식하는 내용들이 모두 이와 다르지 않으니 대선을 치르는 때나,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등 선거 시즌만 되면 철새정치인을 지적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던 장면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얼마 뒤 누구는 어디로 갔고, 누구는 어느 자리에 앉았고, 누구는 어떻게 됐다더라, 또 누구는 때도 아닌데 승진을 했고... 그게 다 누가 선거에 당선되면서 도와준 사람 밥그릇 챙겨준 게 아니냐 하는 소문이 나도는 것도 줄서기가 성행하고 관례화 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보다 더 좋은 줄서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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