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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비둘기의 발가락
기사입력: 2010/03/29 [15:2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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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성신문
봄이다. 날마다 조금씩 봄이 짙어 간다. 한 겨울 찬비와 눈송이에 짓눌려 숨죽이고 있던 가지들의 수다가 합창이 되어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기에 산으로 신으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사람도 그렇게 해마다 부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인간은 그게 아니라서 때로는 비탈에 선 나무들 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인간들의 공격이 아닌 이상 나무들은 늘 그 자리에서 멋지게 계절을 맞이 하는 거다.

봄이라서 모두 좋은 것만도 아니다. 바뀌어 가는 계절의 변화 때문에 감기,비염 따위들로 콧물을 흘리며 심한 몸살을 앓는다.  가족의 질병으로 종합병원 중환자실 문밖의 보호자 대기실에서 창밖을 내어다 본다. 창밖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조용하게 울리자 가운을 입은 의료진과 문안 온 사람들이 밖으로 줄지어 밀려나간다.

옅은 바람에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밝은 표정의 그 사람들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마치 저
쪽세상의 사람들같다.  대기실이 너무 지루해서 나도 자리를 뜬다.  한참 아래층 바깥 정원에는 분수가 힘차게 봄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온갖 생각에 잠겨본다.
 
내 마음이나 알아차린 듯, 한 무리의 비둘기떼기가 코앞에 내려와 앉아 나에게서 먹을 것을 구하는 듯 곁눈질하며 서성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있는 나에게 놀라운 사실 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비둘기의 발가락이 네 개 라는거다.  앞 발가락이 세 개, 뒷 발가락이 한 개,
내가 바보인 것을 오늘 처음 알게되는 순간이다.

그것보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발가락이 떨어져나가  아예 아무것도 없는 놈, 멀쩡한 놈들과 한 하늘을 날때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땅바닥을 기어 다닐때는 얼마나 불편하고 경쟁력이 떨어질까 내가 비둘기가 아니라서 자세히 알 수 없는게 한탄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뛰거 걷고 날아다니기만 하는 비둘기라고 그저 그렇게만 알고 있었던 내가 정말로 바보같다.
 
사람이 조금 잘 산다고 해서 요즘 쌀값이나 전철차표가 얼마인지 모르고 무관심 하다며, 지
체 높은 관리나 회장님이 국민들의 아픔이나 살림살이가 어떤지 전혀 짐작 못한다면 그건 죄악이다. 
 
군인들이 적진의 상황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건 패전이고 멸망이다.  의사가 환자의 아픔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시술이라면, 성직자가 신도들의 고통위에 군림만 한다면 그건 싸가지 없는 건달들 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단지 남에게 직업이 고상하게 보일뿐, 존경할 가치없는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들을 반성하거나 잘 뒤돌아 보지 않으려한다.  뒤돌아 본
다해도 지극히 짧고 간단할 뿐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가며, 꽃들이
피고지고 바람이 일고 비가 내렸다.

아무리 세상이 흘러가도 훌륭한 사람은 숫자가 드물어서 그렇지,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고, 그들 때문에 세상이 이만치 굴러간다.

훌륭한 삶의 양식은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다.  그리고 견디기 힘든 절레력에 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하찮을 것 같은 벽 앞에서 존재의 이유는 무너져 내리고 만다.
 
어둠이 내리고 분수대 앞으로 다시 찾아가 앉앗다.  낮에 보았던 비둘기떼들은 모두 둥지를 찾아 사라지고, 소나무 정원수 사이로 노란 나트륨등 불빛이 스며 나온다. 스며나와서 조용히 나를 본다.
 
 오래된 옛날, 노랫말처럼 목련꽃 피던 봄날 꽃그늘에 앉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젊어서 봄을 노래했지만, 이젠 나이 들어 갈수록 봄 보다는 가을이 친근해 질 것 같다.

새싹들이 잔뜩 초록물감을 짜 낼 듯이 그위로 햇살이 내려 꽂히는 날에는 옛날처럼 멋내고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싶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음을, 올곧은 정의도 없고, 영원한 것은 더더욱 없음을,  지금은 나의 곁에 그대가 있고 그대 또한 나를 의지하여 위로 받고 있지만, 머지않아 나도 그대도 세상에 없음을, 설령 서로가 세상에 아직은 남아 있다해도 잊혀져 가다가 온전히 잊어 버리게 됨을, 몹시 아름다웠던 당신이 얼마나 멋있었던 우리가 어느날 보잘 것 없는 가뭄날 호박잎처럼 시들시들 해버린 우리를 서로 보게 되었음을, 그렇게 되리란걸 오래전부터 듣고 알고 있었을지라도 정말로 지금은 아름답지만 슬픈계절이다.

또한 봄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계절이다.
엄벙덤벙 아까워하지 않은채 사간들을 넘겨 버린다면 내년 이맘때도 아무 진전도 없을 것 같아서이다. 
 
비둘기들의 상처를 통하여, 나는 작은 용기를 새로이 얻고 돌아선다.
산다는 것이 마치 바람과 같다. 바람은 늘 나를 향하여 불어오지만 곧 내 뒤로 사라지고 만다. 마치 나에게로 날아왔다가 별 볼일 없으면 비상하고 마는 한무리의 비둘기떼처럼.

-얘들아 난 네들의 아픔을 진정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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