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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후회 한다는 말
기사입력: 2010/03/04 [21:0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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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건영화학대표
▲    김의도 건영화학대표
새해가 바뀌고 한달 반에다가 구정까지 지났으니 온전히 범의 해가 된듯하다.

한해를 보내고 세모(歲暮)에 이르면 지난날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게 되고 미흡했던 것들에 대하여 후회가 따른다.  
 
하루가 기울고 늦은 시각 잠자리에 몸을 뉘고 잠을 청할 때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과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날 때도 있고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소가 여물을 새김질하듯 여러 화면을 리플레이(Replay)하다보면 그러지 말아야 했을 것 들을 해버린데 대한 후회와 성찰로 몸을 뒤척이게 한다.

침대에 등을 붙이고 누웠지만 생각들은 바람 부는 날의 눈발처럼 흩날리며 때로는 몇 십년 전 아주 어리던 날로 되돌려 이미 떠나신 부모님과 함께 지났던 옛 기와지붕아래 방 세 칸 부엌과 대청마루, 마루 뒷켠문을 열면 어머니가 심어 놓았던 호박넝쿨 사이로 자라난 호박덩이를 작대기로 건드려 보던 별별 생각까지 흑백사진이 되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잠이 저만치 달아날 때도 있다.

진학 준비로 신경이 몹시 예민했던, 고3때 이였던가.   한번은 교실에서 그간 친했던 친구와 육탄전을 벌이며 대판싸움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잠 못 이루며 후회하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며 ‘어제는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그 이후 졸업 때까지 우리는 전보다 더 친하게 우정을 나누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도 그날 밤의 후회가 참으로 가치 있는 후회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도 사과하지 못했던 일도 있고, 신(神)이나 사람 앞에 고백하지 못한 일들도 많은 것 같다. 깊이 생각하면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았고 반성하지 못했던 교만한 마음 바탕에서 나오는 것 같다.

후회한다는 말은 회개 한다는 의미와도 가깝다.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고 저쪽과의 연결을 견디며 기다려야 하고 어색한 인사를 던지고 이야기를 꺼낸 다음에도 상대의 반응과 응답을 살피는 여러 순서에 질긴 인내심을 발휘하고 난 다음에라야 진정한 고백이나 사과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게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슬쩍 한번 건드리는 식의 사과를 한다는 게 더 얄미워 질 때도 있다.
‘흥! 아니면 말고…’ 그래가지고서야 제대로 된 화해가 일어나겠는가.
지나간 것들은 어지간하면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는다.   그 많은 그림들 가운데서도 유독 쉽게 지울 수 없는 한 장의 지난날을 떠올릴 때 마다 후회로 남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 연락받아 나는 임종을 보지 못했다.
여러 해 중풍으로 누워 계신 탓에 늘 그러려니 하며 지냈다.   한 달에 한두 번 형님네로 올라가 손발톱 깎아 드리고 발 씻겨 드리는 게 고작이었으며, 돈이나 얼마씩 형수님께 부치는걸로 모든 걸 형님께 미루어놓고 막내인 나는 태평했다.   아버지 50에 태어난 쉰둥이로 대학4학년일 때 아버지는 이미 70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서울까지 올라와 하숙집 좁은 방에서 불편하게 지나시며 막내의 장래를 위해 이런저런 걱정으로 하루 밤을 보내고 내려가시곤 했다.

내가 좋은 승용차도 사고 집도 짓고 했으나 하루도 모실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체 부모님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게 언제나 뼈 속까지 아리는 죄송함과 후회로 남아있다.
돌아가신지 30년도 지났으나 산소에 가서 무덤을 바라 볼 때마다 막내에게 보내주시던 끝간데없는 사랑의 미소를 떠올리면 이 나이에도 언제나 후회의 눈물이 흐른다.

“사랑한다고 한번도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 늘 나 힘든것만 말해서 죄송하고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죄송하고 늘 내가 잘나서 행복한줄 알고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100%믿어서 죄송하고 부모님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가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서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사과도 후회도 시간이 너무 지나 때를 놓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거늘  그때 그 시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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