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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이 ‘기득권의 법’인가?
기사입력: 2009/12/22 [11:0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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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주 시인/민중문화정책연구원장
▲     © 울산여성신문
19세기 초 영국에서 최초의 노동법인 ‘공장법’이 나온 까닭은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에 노동자가 너무 오래 일할 경우 노동자가 비참해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서는 기득권층의 돈벌이 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의 확대 재생산이 길게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노동법은 원래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다. 노동자 보호는 물론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노동사회의 기본 질서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도 헌법에서 행복추구권이나 평등권, 사회 보장권, 그리고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보장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 등 여러 노동관계법이 있다 그런데 이상한 역설이 많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노동법이 노동자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해서는 안된다는 취지 아래 ‘이런저런 조건을 정당한 해고’라 명시하는 순간, 그 법은 ‘이런저런조건을 형식적으로 갖추면 누구나 해고할 수’있는 법이 되어버린다.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의 눈물, 2001년 정리해고 통지서인 ‘노란 봉투’를 받아든 대우차 노동자들의 눈물,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과 울산항 예선노조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바로 이점을 상징한다.
 
노동자와 가족의 분한 마음은 "평생 뼈 빠지게 충성한 결과가 겨우 '정리 대상자'라니..."라는 말로 압축된다.

또 양성 평등을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남여고용평등법이나 모성보호법 등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고용을 꺼리는 경향으로, 고용을 하더라도 차별적 일자리로 정리 해고시 최우선 희생자로 나타났다.
 
나아가 비정규직법은 어떤가? 파견노동자나 기간제 노동자가 최대 2년간의 노동계약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조항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법에 따른 2년이 되기 전에 '계약해지'를 해버리거나 이상야릇한 무한 계약직이 도입되기도 한다,.

보호 장치가 불안 장치로 둔갑하는 역설이다 ' 외국인 노동자법'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의 고용관계에 합리적 규칙을 만든다는 법이 이주노동자의 작업장 이동도 사실상 제한하고 '임금 노예'외의 인간적 활동을 하고자 하는 경우 해고 대상이 된다.
 
합법적 테두리에서 운신할 폭이 좁으니 이주노동자들이 역설적으로 불법, 즉 미등록 상태로 빠지게 된다.

한편 공무원과 교사의 경우는 별도 법으로 정해 놓고 양심적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척결'을 구호로 내세우며 통합 노조를 만들자 노동부가 구차한 토를 달자 퇴자를 놓는다.

참된 교육자들이 노조까지 만들어 행복한 교육현장을 만들려 하자 교과부는 '눈엣가시'처럼 대한다.

또 대학 강의의 절반을 담당하는 시간강사들은 '교원'인정도 못 받는다. 최근엔 합리적 노동관계의 형성을 위한 제도를 탐구하는 노동연구원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원장이 2009년 2월 노동계의 '신종플루'라 불리는 단체협약 일방 해지에 이어 10월 국회에서 "헌법에서 노동3권을 빼자고"했고 11월 말엔 노조와 어렵사리 교섭을 해놓곤 기습적으로 '직장폐쇄'를 해버렸다.
 
심지어 노동부장관조차 12월 국회 환경노동 위원회에서 "노동3권 중 단체교섭 행동권을 제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노동법의 역설'이 문제가 아니다. '헌법의 역설'수준이다.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까지는 좋은데, 그 나간권력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뭘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차라리 솔직히 노동법이나 ' 헌법 등 모든 법이 '기득권의 법'이라 공포하는게 양심에 떳떳하지 않을까?

요즈음 우리 사법부는 법치를 유난히 강조하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잇달아 경종을 울리고 있다. 다급한 일이나 위험을 경계하기 위해 치는 것이 경종이다.
 
무리한 코드 인사에 대한 위법판결은 행정이 '법과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경고이자, 민주주의의 퇴행이 묵과 할 수 없는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사법적 판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귀를 틀어막고 해볼 태면 해바라는 식으로 버틸 구실은 더 이상 없고, 그런 치졸한 형태로는 더 큰 것을 잃는다.
 
이명박 정권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법치'는 누더기가 되고, 민주주의 원칙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정권의 권력 남용에 대한 법원의 경종은 언제든 민심의 거센 저항으로 바뀔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그 기로서 처해 있음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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