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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연탄 보다 못한 때
기사입력: 2009/11/17 [14:23]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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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건영화학대표/울산지방법원조정위원
▲     © 울산여성신문

지난 추석때 명절을 며칠 앞두고 회사에서 긴박한 일이 생겨 성묘를 가지 못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땅속에 누워 아무말이 없으니 살아있는 친구 보다도 다소 만만했기에 그러 했겠지만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이용’의 노랫말을 떠올리며 산소엘 다녀왔다.  
 
가을이 거의 끝나가는 들녘에 햇빛이 반짝이고 오가는 가을바람에 나뭇잎들이 먼길을 떠나는 듯 흩날리다가 산자락 오솔길로 맥없이 떨어져 눕는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나는 무엇에 얽매여 살아 왔던가. 나이만큼 생각이 깊어지며 뒤돌아 보게 된다. 사업이 나의 주된 일이었기에 언제나 돈에 얽매였던 것은 속일 수 없다.  

아무리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죽을때는 돈을 남기기도 하지만, 마음대로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도 마찬가지다. 아까워서 못쓰고 없어서 못쓰고 그러다가 저 낙엽들처럼 땅속에 눕는게 아니던가.

또한, 가족이란 족쇄에 얽매여 한세상 다 보냈다는 생각도 든다. 말년에 중풍으로 누워계시던 부모님을 뵈러 수 없이 들락거렸던 옛날이 떠오른다.

자식둘을 유학길에 올려놓고 밤마다 기도드렸던 헤일수없는 그 많은 시간들하며 물론, 가족이란 사랑의 매개체이기에 고통조차도 기쁜의무로 받아들여야 했겠지만 이런저런 얽매임으로 한세상 다 보내고 포석정의 뒷산 산소로 가는 오르막 길에서 헐떡이는 가슴만큼 머릿속에서도 복잡했던 추억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언제 부터인가 ‘나는 예외이다’,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더러 있었다. 나는 절대 암에 걸리지 않을것이며, 나는 오래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그런 턱도 없는 생각들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일들이 모두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인것처럼 그런 생각 말이다.

어느날 터미널에서 구두를 닦는데 그 양반 입에서 뱉어져 나오는 말들이 걸작이다.   자신은 구두나 닦고 있을 위인은 아니란다. 더 큰일 더 훌륭한 일들 할수 있는데 이짓을 하고 있단다.  
 
속으로 나는 웃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십년도 더 보아 왔으니까 말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병도 인간에게 있어 큰 병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산다.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는 동안에 추억은 날마다 쌓여간다. 아무리 뼈아픈 추억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아름다운 그리움이 된다. 다시는 되돌아 올 세월이 아니기에 그렇다.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그 시간들 이었는데 저만치 아주 까마득하게 지나쳐 버렸기에 아쉬워 하는거다. 인간에게 죽음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거다. 우리에게 망각이 있기 때문에 인생이 행복한거다. 만약에 죽음도 망각도 없는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 우리에게 존재 하게 될까
 
미국의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9~10월에 실린 사회학자 ‘컬트너’의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하여서는 친절하며, 너그러운 관용을 지니며 자기희생과 협동심을 발휘한다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에도 행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를 존경 해본 경험이 있었는가, 또 진심으로 누군가를 측은히 여겨 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가? 이런 질문들을 끈임없이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산소에 오르는 시간같이 특별한 날에나 한번쯤 생각 하다가 이내 접고 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언제나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고 만다.

사람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일 뿐일 것 같다. 같은 사람이 남에게 베풀기도 하고 뺏기도 하고, 정직하고 싶을때도 있으나 거짓말도 하고 설교도 듣고 도둑질도 하고 자신은 건방지면서도 겸손하라고 가르치고… ….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누가 옮기지 않는 한 산소도 늘 그렇게 거기에 있고, 옛말처럼 굽은 소나무들이 그 곁에 그늘을 지워주고 잔잔한 바람도 여느때처럼 불어오고 있었지만 변한 것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란 시가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인 적 있었드냐?‘

아! 부끄러운 산소의 가을이구나.   넉넉한 날들 다 보내고 이제와서 이런 생각 든다는게 지금도 늦지 않게 철들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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