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의도
그리움은 축복
기사입력: 2009/09/15 [11:25]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의도 울산지방법원조정위원 건영화학대표
                                                      
▲     © 울산여성신문
아주오래전에 ‘OK 목장의 결투’란 정통 서부영화가 있었다.
최근 어떤 휴일낮에 우연히 다시보게되어 무척 감동스러웠다. 미국의 서부역사상 명성을 떨쳤던 명보안관 ‘와이어트 어프’ 형제들과 악한 클렌튼 일당이 톰스톤에 있는 OK목장에서 한판 붙는 이야기이다.

 
조용한 마을에 악당들이 떼지어 출몰하여 함부로 양민에게 총질을 해대기에, 보안관은 사랑하는 여인이 살고 있는 켈리포니아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맨날 노름을 즐기며 술을 퍼마시는 총잡이 ‘닥’이 세상에 하나뿐인 정의로운 친구 보안관 ‘와이어트’를 위하여 마지막 일전을 불사하는 서부사나이들의 의리와 정의에 아이콘이 맞추어져 무척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이다.
 
 
황금을 쫓아 동부에서 서부로 총잡이들이 밀려들었던 텍사스였지만, 지금은 반바지도
함부로 입고 다니지 못하는 예의 바른 신사의 고장으로 변했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까지 부자간에 대통령직을 수행했을 만큼 텍사스는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이런 미국의 힘은 서부시대의 개척정신을 뿌리로, 무모하리만치 어리석은(?) 정의의
지킴이와 끝도 없는 악에 대한 도전으로 오늘까지 이어진다.
 
 
그 일예로 이락전투에 참가한 미군 병력이 200만이나 되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여군병력이
11%인 22만에 가까웠고, 전투중에 전사한 여군이 120여명이나 이르렀어도, 정의수호에
따른 미국 국내 여론은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하니,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남녀
평등주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이야기를 하다가 옆으로 좀 오버 해 버렸지만, 친구를 칼로 찌르고 쌍욕이 난무하는
어떤 국내영화를 두고, 원로 배우 신성일이 “그것도 영화냐?”고 한마디 했다가 일부 네티즌
들에게 벌떼같은 공격으로 곤욕을 치룬적이 있기도 했다.

 
문화나 예술에 표현 자유가 있다고 해서, 시대나 정의나 역사를 왜곡하는데까지 자유를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부자나 지배계급으로부터 철저히 억압당하고 고통받아야
직성이 풀리도록 만들어 놓았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부잣집 식모로 살며 그집의 어린딸로부터 학대 받는 설정을 넣은
‘국가대표’ 영화나 일본이나 미국을 내세워 난데없는 적개심을 자아네게 만든다.

 
내가 노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경쟁이 심해서 환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대들이
너무 잘나서 힘이 세서 나는 일어설수없다는 얄팍한 패배 의식을 부추겨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잘 되지 않는 20~30대들에게 극단적인 피해의식이나 마이너리티 감성에
잡혀 있게 만든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거대한 지배계급이 나를 짓눌러 이모양 이꼴이 되어 버렸다.’는
식이다.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영화 스토리와 맞물려 대리배설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절망과 분노로 뒤틀린 심사는 온갖 권위와 부자, 관료주의, 반미 반일 등의 몇가지
코드로 출구를 압축시켜 분노를 일으키고 분노는 다시 재 생산된후 사회곳곳으로 스며들고
퍼져 나가게 된다.
 
 
내일이 시험날인데 어두운 밤에 촛불을 켜들고 어디엔가 나가 앉았을 우리들의 아이들이
있었다면, 과연 부모들은 무어라고 이야기 해야 할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너무 힘들게 살아간다. 그런 여린 심정을 이용하고
콤플렉스를 자극한뒤 앞뒤없는 감상주의로 증폭시키고 분풀이로 유도 한다면 그건 나쁜
문화라고 감히 말해두고 싶다.
 
 
힘없는 자들에게 건강한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동기부여를 통하여 새로운 희망에 도전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건전한 문화의 사명이고 책무이다.
 
 
세상의 상처를 더 크게 찢지 말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모두가 애써야 할 것이다.
건강치 못한 사회에서 건강치 못한 소비층이 건강한 시장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남에게 욕을 퍼부어서 먹고 사는 인간도 있고 남의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같은 존재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문화나 예술에 있어서만은 더러운 이야기들을 좀 그만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인생은 꼬이고 꼬인 연속극 같은것이라 해도, 아무리 인생은 예상할 수 없고, 불운
이라고 해서 피해갈수 없는게 운명이라해도, 평화로운 이야기가 나약한 인간들에게 다시
사는 힘을 주는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을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너무 힘들어도 참고 또 기다려 보자. 기다림이나 그립다는 느낌도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하겠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