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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지금은 지혜를 모을 때다!~
기사입력: 2009/06/08 [19:0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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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북경대학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 특임연구원, 논
 
▲ 이경우(본지 논설위원·북경대 교수 )     ©

 
아무도 예상치 못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련과 도전의 과제를 남기고 헌정사에 역사적 비극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노무현정부의 출현은, 미디어의 성장과 함께 젊은 세대의 급속한 지지를 토대로 헤게모니가 조성되면서,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속성,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권위주의가 공동선을 빼앗은 것으로 규정하고, 변혁을 요구하는 세력에게, 국민이 참여하는 공공의 이익과 깨끗한 정치구현 등 새로운 정치문화를 혁명보다 강하고 진한 변혁의 추동력으로 안겨주었다.
 
그에 따라, 반권위주의적 상스러움에 가까운 말투와 욕설에 가까운 거친 표현, 어법들이 서열과 권위에의 도전과 파괴처럼 출렁이면서 ‘사회적 대통합’이라는 정권의 최상목표와는 다르게 2030세대와 5060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으로 작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자신부터 권위의 옷을 벗어 던지기 위해 평검사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솔직하고 장난끼 어린,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막가자는 거죠)~”라고 검사 중 한 명에게 응수했다. 이때부터 집권말기까지 반대 여론은 대통령의 언과 행이 ‘가볍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고 공감했지만, 대다수는 그의 풋풋함과 순수함을 오해했고, 그리고 호도했다. 권위와 서열이 아니라,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를 파괴하기 위함이었으나, 서열과 경륜을 조직 체계의 제일 원칙으로 지켜 온 검찰과의 가치충돌은 불가피했다. 그들과의 일전(一戰)은 노정된 것이었고, 끝내 악연과 화근의 불씨가 된 것 같다. 

 권위주의 해체를 요구하던 시민사회는, 권위적이지 않다고 등을 돌려댔다. 진보세력 역시 최고정책결정자로서의 고뇌를 깊이 헤아려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짝퉁개혁’이라고 등을 돌리며 떠나갔지만, 노동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법질서도 지켜야 했기에 노동자의 대변인이었던 그가 노동자를 감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고뇌를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계속되는 발언시비로 탄핵소추를 당할 때, 정말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이 나올 법도 했을 것이다. 그의 탈권위적인 행태는,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비화되었지만, 사회통합의 목표에 도달하려면, 과도적으로 반드시 넘어서야 할, 대통합의 도전이었으나, 코드인사 강행이 또 하나의 실패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변혁을 추구하는 탈권위적정부로 인한 불안과 신뢰부재의 갈등을 경험하고, 숨을 돌리기 위해 이명박 정부에게 권력을 이동하여 안정과 협력의 축이 되어 줄 것을 선택했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환경운동을 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려고 김해 봉화 고향마을로 내려갔다. 그러나 결국, 검찰과 언론의 포화를 받게 되었고 자신에게 엄격한 결벽증에 가까운 도덕성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되자, 견딜 수 없는 모멸감에 시달리면서 ‘모든 짐을 홀로 지고 떠나겠다’는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 ‘나를 버리라’ 말 할 수밖에 없었던 벼랑의 끝에서 뛰어내린 그의 사후에야 그를 몹시 그리워하는 우리사회의 심상을, 자신이 선택한 위정자와 함께, 실책조차 감싸 안고, 함께 고뇌하고 인고하는 책임성 있는 우리 국민의 성숙된 상으로 앞당길 순 없는 것일까.

 이제, 남아있는 국민적 충격과 애통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감정과 분노와 그리고 국론갈등과 분열의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 것인가. 이 고통의 시간, 국민적 고뇌를 가슴보다 머리로 승화하기 위해 ‘지금은 지혜를 모을 때다’. 이념적 갈등을 넘어서자.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가. 진정한 개혁은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사정과 개혁의 서슬 퍼런 칼날을 타인을 향해 돌려댄다면, 그것은 비수다. 자신을 스스로 질책하자. 자신에게 관대한 것처럼, 성숙한 관용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알력을 행사하는 권위의 옷은 벗어야 한다. 권위의 옷은 벗을수록 만들어지는 것이다. 수없이 늘어선 ‘조문행렬’을 보고 있지 않는가. 잃어버린 그가 그립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하자. 역사 앞에 위대한 유산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는 계기로 삼자.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면, 현 정부를 지지한 48.7%가 성숙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지지하지 않았을지라도, 민주사회의 다수가 지지한 현 정부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위임된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누구나 실책할 수 있다. 위정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문책하고 책임지우기에 앞서 내가 선택한 국정지도자를 인내와 격려로 기다리는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기득계층의 지지를 받는 정부, 그리고 서민의 정부,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소외된 국민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권의 파당성을 넘어서서 소외되는 국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국민모두에게 연민을 가지고, 실책을 돌아보면서 세대와 계층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부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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