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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고 나약한 신인배우일 뿐입니다”
기사입력: 2009/04/26 [14:4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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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민중문화정책연구원장 박삼주
 
▲ 박삼주    
싱싱한 생명력으로 파릇파릇한 새싹이 봄기운 풍성히 느끼게 해주는 계절에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게 무슨 무슨 ‘게이트’요, 부록으로 딸려 나오는 게 누구 누구 의 이름이 들어 있네 하는 ‘리스트’지만 지금 시중에 흘러 다니고 있는 ‘봉화마을 리스트’에 가려져 있는 어떤 리스트는 뒷맛이 아주 고약하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그것이다. 한 신인 여자 탈랜트가 자살하면서 남겼다는, 술시중을 강요하고 잠자리를 함께 할 것을 요구 했다는 사람들의 명단이다. 방송사 PD에, 광고주란 이름의 기업인에다 언론사 대표의 이름까지 줄줄이 사탕이다.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유력 언론사 대표의 신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양심적인 국회의원에 의해 공개 됐다. 그동안 귀엣말로만 오가던 이야기가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힘입어 비로소 공개된 것이다. 그들은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 대표 2명, 고 장자연이 단역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감독(PD)2명, 기획사 대표 2명과 일본에 도피 중인 전 소속사 대표, 인터넷 신문대표 1명과, 금융계 간부 2명, 정보통신업체 대표 2명 등이 아리따운 처녀를 성적 향락의 대상으로 삼으며 검은 거래를 강요했다니 참으로 요지경 세상이다. 

 붉은 주단을 밟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상을 받는 사람들의 세상, 황금시간에 국민의 시선을 끌어 당기던 드라마 세상의 바깥에 이런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화려하게 꾸며진 정원의 대리석을 자빠뜨려 지렁이와 벌레들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걸 본 것처럼 구역질이 난다. 고 장자연씨는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문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힘 없고 나약한 신인배우일 뿐입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기자로 입신 할 꿈에 부푼 한 아리따운 처녀의 삶을 비극적인 자살로 끝맺게  한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앞서 거론한 그들 모두일 수 있겠지만, 배후의 더 큰 범인은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의 일그러진 그림자다. 

 쌓아올린 돈과 권력을 한 처녀의 꿈과 삶의 순결성을 짓밟는 데 악용한 범죄 피의자들의 신원 공개는 무죄 추정의 원칙 등 헌법과 형사법의 여러 원칙으로 보면 찬성하기 힘든 일이긴 하다. 하지만 성범죄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는 우리 사회가 이미 대체로 합의를 해온 터다. 사회 유력 인사들이 여성 탈랜트에게 접대를 받거나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번 ‘장자연 사건’은 이권과 편의 따위를 대가로 성을 사고 팔았다는 점에서 다른 성범죄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유력 인사들이 사회에서 지닌 힘을 내세워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책임 역시 우리 사회가 따져 묻는게 당연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비리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니 공적인 의미 또한 작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국회가 이 문제를 다룬 것은 그 책무를 한 것일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수사를 맡은 경찰의 태도다. 장씨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는 유력 인사들을 감추기에 급급했으니,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경찰은 사건 실체를 확인해 줄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의 강제송환에도 나서지 않는 등 대놓고 미적대고 있다. 실제 성접대가 있었는지를 규명 하기는 커녕 이를 고발하는 문건의 진위를 따지는 데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경찰은 나아가 ‘장자연 리스트’에 들어있는 유력 인사들을 변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수사를 하기도 전에 미리 선을 그어둔 셈이다. 경찰에 나오길 꺼리는 조사 대상자는 소환 대신 방문 조사를 한다고 했다. 이러니 경찰이 언론사 눈치를 보면서 조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경찰 안팎에서 결국엔 유력 언론사 대표 말고 힘이 덜한 사람들만 처벌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입방아에 오른 조선일보가 실제로 보도나 막후 압박을 통해 경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았는지 묻는 소리도 나온다. 

  오늘은 고 장자연씨가 목숨을 끊은지 꼭 49일이 되는 날이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치부를 또 다시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 한 인간의 꿈을 돈과 권력으로 짓밟아 죽음에 이르게 한 우리 사회의 천박과 비열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통한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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