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경우
부활절에 그리스도인에게 고함
기사입력: 2009/04/17 [13:48]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경우 논설위원
▲ 이경우(본지 논설위원·북경대 교수 )     ©
기독교인에게 최고의 절기인 부활절!~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은 모두 빼놓고 영광만을 바라보고 열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께서 뭐라 하실까? 4천 7백만 가운데 천만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의 절반 정도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정치가 자파이익과 비리는 물론 국민들을 볼모로 한 온갖 더러움이 묻어 나온다. 예수께서 율법에 매여 있다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형제를 사랑하라(요한복음 13장 34절)’명하셨다. 네게 주어진 의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 이것을 실천하라 말씀하시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부활의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자격이 없음을 고린도전서 13장 2~3절에 말씀하셨다. 
 
 성경에 명하신 율법의 계명은 613개이다. 그 중 248개는 긍정적인 명령으로 ‘하라!’로 되어있고 나머지 365개는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으로 되어있다. 조항이 너무 많아 일일이 암기하기도 어렵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어 지키기 불가능한 율법을, 예수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지킬 수 있도록 바꾸어 제시하셨는데 이것의 핵심은 ‘사랑’이라는 한 가지 가치의 결집이었음을 각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하늘 사상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우리 사회는 처절한 늑대생존의 각축장이 되어 서로 물어뜯기에 급급하다.

 특히나 교회가 이 ‘사랑’을 문자적인 요소로 신앙할 뿐 삶속에서 묻어 나오는 것은 더러운 냄새만 풍긴다고 하면, 예수께서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40절에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냉수 한 그릇, 위로 한마디, 헐벗을 때 입혀주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시겠다는 그 말씀을 잊어버린 걸까?    오메가리더는, 현대판 아간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들을, 하나님만이 보시는 능력의 가치들을 공유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일까?

 종교적 교리에만 깊이 매인 사람들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관계의 다양한 기복을 경험해야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이 생기는 법! 하늘 사람이라고 하는 기독인들이 예수 사상에 깊이 들어가야 하나님의 뜻의 이해와 같아지는 능력중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인데,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사람, 상대의 고통을 감지할 능력이 결여되어있거나, 상대방을 파멸시켜 놓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들이 허다한 것을 보면, 일종의 사이코패스의 모습 같아 보인다.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신 요한복음 5장 1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일상에도 입혀 주시기 위해 일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의 제자라고 하는 이들의 가슴에 일하신 사랑의 실천을 마땅히 이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사랑이 메말라 있다.

 1,000만명 그리스도인들이여!~ 각성하지 않으면, 요한일서 3장 10~14절에서 생명과 사망의 구별의 표시를 ‘형제 사랑’이라고 하신 예수의 사랑을 잃어버렸다가는, 종교적 행위가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오면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신앙으로 충만한 마음, 그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 열린 마음, 주는 마음, 경청하는 마음으로 ‘형제 사랑’이야말로 바로 예수님 리더십의 핵심요소임을 인식하자.

 ‘사랑’이라는 리더십의 핵심정신을 실천하여 십자가형을 통해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것을 믿는 자는 은총으로 구원의 긍휼을 얻게 되었기에 예수께서 보이신 사랑의 실천을, 소금과 빛의 사명으로 우리사회에 실천하고 감당해야 복된 민족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우리사회가 부패하고 어두워져만 가고 있는 것일까?

 손해 봤다고, 이용당했다고, 자신의 이익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세포의 유기체인 인간의 몸에 독립된 암세포가 퍼져버린 것처럼, 형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나라가 이 사회에 임할 수 없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천만성도들이 사망의 세포에서 떠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예수사랑의 생명의 유기체로 거듭나기를 고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기 권한다. 세상 끝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이 땅의 주인은 누가 되는 것인가. 암세포는 아니지 않겠는가.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