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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상스러움과 폭력으로 얼룩진 사회
기사입력: 2009/03/23 [12:5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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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논설위원
 
▲ 이경우  논설위원
언어생활을 보면 우리사회의 정신 상태가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상스럽기 그지없는 욕설문화가 우리 곁에 와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친구들을 만나면, 욕설이 스스럼없이 인사말로, 일상적인 말로, 스며들어 사용되고 있다.

 ‘구시입하문 설시참신도(口是入禍門 舌是斬身刀)’라 하여,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어찌 말을 함부로 하겠느냐 했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교육을 ‘미친 교육’이라 극한 용어를 선택하여 적개심이 나타나도록 안티 어법을 사용해서 품위를 상실한 오늘날의 스승 상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다.

 언어 선택은 그 사람의 품위를 나타낸다. 미국의 진보세력인 민주당 후보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 그의 연설에서,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여 미국의 힘을 결집시키는 희망을 표방함으로써, 미 국민의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와 무명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일거의 이변을 낳았다. 반면에, 촛불시위의 시발점은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겠지만, 거짓말과 말 바꾸기, 선동, 둘러대기, 떠넘기기 등.. 추잡한 얼굴들이 만들어 낸 재앙이다. 우리사회에 염치와 예의를 중시하던 품위는 사라지고 상스러움이 판을 치게 된 현실을 한번 쯤 돌아보자.

 독한 항생제를 자주 주사하면, 바이러스의 내성이 강해져서 마침내 퇴치 불가능한 슈퍼 바이러스가 탄생한다. 남에게 주는 상처 따윈 아랑곳없이 독한 말을 하다보면, 전투용 내지는 이익 관계용 언어만이 살아남아 만인에게 만인은 늑대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처만 가득 안게 되고, 소외감과 외로움에 스스로 갇혀버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환상과 자극을 추구하게 되어 반사회적 인격이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위장된 이중인격, 이중 언어가 또 하나의 사회 폭력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2007년을 고비로 사회적 갈등지수가 점점 더 악화되어 분열이 심화된 다양한 사회폭력이 잠복된 우리사회. 끝나지 않는 용산 참사도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마저 없어 방관에 가까운 상태! 개발이 산재되어 있는 곳곳에는 언제, 어떤 형태의 불상사가 재현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도록 느껴지게 만듦으로써 갈등이 폭력을 자아내고 있다. 나라법 위에 떼법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회, 사회가 거칠어지고 난폭해지는 이유는 법집행이 평등하지 않다는데서 발생하는 불만에 기인한다. 다중의 힘, 권력의 힘, 물질의 힘이 밀어 붙이면, 뭐든지 해결된다고 믿기에 공공의 법을 무력화시키게 되고 사회는 점차 거칠어지게 되는 것이다.

 케리 베커교수의 합리적 범죄 이론에 의하면, 위법행위로부터 얻는 기대 이득이 있을 때, 법은 그 때부터 사라진다는 것이다. 포이에르 바흐는 이것을, 범죄의 ‘고통과 쾌감의 메쎄지’에 있다 한다. 즉, 머릿속에서 범죄의 고통보다 쾌감이 우선시 되면, 범죄를 서슴없이 행하게 된다. 용산 참사 이후 우리사회는 정쟁에 매달리거나, 희생양을 찾는 것으로 갈무리 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학자나 정치적 장치도 없이 개발욕망이라는 괴물은, 다섯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욕망과 이익에 따라 남이야 죽든 살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극단의 이기심이 질서는 없어도 좋다는데 동의하는 합의서가 되고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하고자 상스러움과 폭력이 판단의 기준조차 없이 난무하는 사회는 공동체는 없고 개인만 우선이어서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임에도, 자기중심적 집단주의가 코드화 되어 우리 속에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는가. 욕설문화와 폭력문화가 조폭수준에 가까운 사회는 신뢰와 질서가 파괴되어 미래의 희망이 없게 된다.

 당면한 금융위기는 조금만 참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속에 상스러운 욕설과 폭력이 곪아 가면 치유할 수 없는 힘든 병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구나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웃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말하고 배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질서와 인간성 회복이 공동체의 삶의 기초가 된다.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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