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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단상
내가 본 개성공단
기사입력: 2007/06/05 [09:55]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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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발행인
박연폭포와 화담 서경덕, 황진이를 송도의 변치않는 3절이라 칭송하며 자랑으로 내세우던 개성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개성방문은 ‘남북경협과 지역언론’에 대한 세미나이며 개성공단 현황과 미래전망에 대한 시찰이었지요.

울산에 도착한 다음  날 개성공단 2차분양이 평균 2.4대 1로 완료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더군요. 사실 개성공단에 투자할 중소기업을 인솔해 개성을 다녀오던 관계자를 보며 필자의  비관적이었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옛말을 재삼 실감했습니다.

   정확히 보고 알고 난 후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본 개성공단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평화통일로 가는 거점이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봤습니다.

  물론 일천한 경험이나 경륜으로 의사를 개진함은 위험천만의 발상이겠으나, 이런 낙관적 전망은 필자 개인의 좁은 판단과 긍정적 사견임을 전제로 글을 쓰는 바입니다만. 따라서 이번 개성공단 시찰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180도 전환시킨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성은 고려의 5백년 도읍지로 서울에서 60Km,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유서깊은 고도가 아닙니까? 하루도 아닌 10시간의 빠듯한 일정이라 개성시내를 볼 수 없음이 아쉬웠지만 일정에 맞춰 지역신문 언론인, 기자단과 인솔팀 70여명이 새벽밥 먹고 6시부터 움직였지요.

  투자를 위해 현지답사를 가는 기업인을 태운 대형버스 2대 언론재단측 버스2대 총 4대가 비가 흩날리는 통일로를 힘차게 달려갔지요. 개성공단은 우리 측의 자본과 기술력, 북측의 토지와 인력의 활용으로 상생의 길을 갈 수 있는, 더 나아가서는 통일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파주시 장단면’이란 이정표를 지나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라는 남측 출입사무소에 들어섰고 수속을 마쳤지요.

  군사분계선을 지나 북측 출입검사소에서는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야 했습니다. 가방속의 소지품을 샅샅이 검열을 당했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읽다 가져간 책을 한 장씩 넘기며 내용까지 검사하는 여성검사원이, 책 사이에 끼어있던 필자의 사진을 보고 “배우같습네다”라고 농담을 했고 일회용 화장품을 보며 부러워하는 듯 해서 미에 대한 여성들의 공통관심은 다 똑같다는 생각도 잠시 해봤습니다.

  뒷사람에게 미안해서 “별건 없는데..”라는 내 혼자말에 남측의 물건과 사는 모양새도 구경하니 좋고 그것이 사는 재미가 아니냐고 해서 의외의 너스레에 놀랍기도 해서 같이 웃었지요. 참 세월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지고 간 신문은 불온유인물이라는 명목으로 압수당하고 돌아나올 때는 5~10$로 표기된 벌금통지서를 받았지요. 아직도 개방준비가 덜 된 무원칙의 후진국수준이어서 같은 물건에 대한 벌금이나 허락유무가 원칙이 없고 검사원 개인의 판단에 의해 처리되고 있음이 체제정비가 안된 듯 여겨졌습니다.

개성공단은 황해북도 개성시 일원 65.7Km제곱, 2000만평 규모이며 1단계 공단조성이 끝난 100만평은 봉제, 신발, 가방등 노동집약 업종 중심의 중소기업이 입주해 활발하게 제품생산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근로자 대부분이 여성들이고 수작업이 많은 시계조립, 속옷제품, 프라스틱 사출품 등이었지요.

  뉴스에서 보도한 2단계 공단 150만평은 세계적 수출기지를 육성하도록 계획되었고 3단계 350만평은 IT,바이오등 해외유망업종의 최첨단 산업분야의 복합공업단지로 개발, 동북아 거점개발로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아닙니까?

현재 우리측 참여기구로는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가 업무를 총괄하고 통일부의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에서 주요계획을 수립하고 조정협의하는 일을 관장하며, 한국토지공사와 현대아산이 공업지구개발과 하부구조건설을 맡고있으며 북측에서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세무관리와 법규시행세칙 작성등을 맡고있습디다.

사업이 시행된 지 2년여만에 개성공단은 놀랄 만치 빠른 속도로 변화와 발전을 함께 하고 있었고, 남과 북이 분단 50여년만에 처음 연 경제협력 사업이고 우리는 통일에 대한 열망과 그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꿈에도 생각 못했던 금단의 땅에 80여명의 우리측 관계자와 북측의 1500여 근로자가 함께 손잡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개가 깊었습니다.

  또한 세계적 수준인 우리의 기술이 허허벌판 버려진 개성땅을 개발하고 전력과 통신, 폐수처리등 주요기반시설을 진행해 명실상부한 국내수준의 공단이 조성되어 있음이 놀라웠지요. 물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생산지표시라든가 임금문제, 예측이 불가한 정치적 변화에 따른 우려와 불안해소등의 난제는 있지만 어려운 첫 발을 내딛고 머리 맞대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 벅차게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특히 한 달 급여 50$를 받고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고 일년 한,두번 하는 목욕을 매일 할 수 있다는 것과 영양가 높은 한 끼 점심식사로도 뺨에 살이 오르고 있는 북한 근로자를 볼 때 하루 빨리 개성공단의 2000만평 사업이 확대되어 남북의 경제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한민족의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맘으로 ‘도라산교’를 지나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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