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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성의 시인순례
시인순례⑥-월 식 (月蝕)
기사입력: 2006/04/18 [16:1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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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성 주필

                     김  명  수
 
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욱 성큼
성큼  
남겨 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던 저녁(시는 중앙에 배치시킴) 
         
김명수 시인의 특징은 시적인 기교가 대단하면서도 현실과 사물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적 통찰력이 뛰어나다.

위에 소개한 월식은 이 시인이 언어를 얼마나 환상적으로 다루면서도 함축성 있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빈 마을을 지나간 사나이와 그가 남겨놓은 발자국, 그리고 그 뒤로 말이 없는 누이와의 연관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사나이는 누이의 정부였을 수도 있고, 전쟁터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죽은 누이의 남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발자국만 남긴 여운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누이의 정부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사건도 달이 마을을 환히 비추어 주는 때가 아니라 만월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는 시점에 생기며 사나이의 발자욱은 외로운 개들마저 침묵시키며 누이의 가슴에 새겨진다.

조용한 마을의 잠과 사나이의 붉은 발자욱 그리고 누님의 침묵이 던져주는 사건은 개들마저 침묵시키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둔갑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절묘한 시적 압축력이 독자들을 흥분시킨다.

그런가 하면 이 시인의 작품 “호랑나비”를 보면 풀릴 대로 풀린 경상도 아줌마의 태평스러움이 우리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경상도 아주머니가 낮잠을 잔다/서른 살에 혼자되어 산전수전 다 겪었다/억세고 요란스러운 경상도 아주머니/오늘은 공휴일이라 색시들 다 소풍 보냈다/하나뿐인 뚱뚱이 딸도 따라 보냈다/보아라, 경상도집 아주머니 태평스러운 낮잠 속에/이 세상 쓸쓸하고 아름다운 만고풍상/꿈속에 꿈속에 봄날 천지에/호랑나비 한 마리만 날아다닌다(호랑나비 전문)
 
월식의 함축성과 호랑나비의 직감적인 묘사는 대조를 이룬다. 그러면서도 직감적으로 묘사된 호랑나비가 던져주는 억척스러운 삶이 미소로 우리들에게 다가서는 것은 김명수 시인이 가지고 있는 세련된 언어의 조련술 때문이리라.

김명수 시인은 1945년 안동출생으로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월식, 하급반 교과서, 피뢰침과 심장이 있으며 1980년 시집 월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1985년 신동엽 창작기금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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