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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도
가지 않는 길
기사입력: 2014/09/04 [14:13]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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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도 건영화학 대표/국제PEN 문학회원     © UWNEWS
‘노란 숲속에 두 갈래의 길이 나 있었습니다’ 로 시작되는 미국의 대표시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는 길’ 이 있다. 먼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 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의 끝자락이다.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한 시인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길이 없지만, 분명 행복의 길이였을 것으로 상상하고 싶다. 인생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선택으로 시작해서 잠들기 전 까지, 태어나서부터 죽는 그 날까지 끊임없는 선택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때로는 갈림길에 맞닥 뜨리고, 그리고 한 참 세월이 흐르고 난 뒤 그날 그때의 결정에 대해 만족하기도 하고 후회 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인생의 굴곡이라 부른다. 후회할 선택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나쁘지만 않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다.
 
옷은 한번 단추를 잘못 꾀면 다시 고쳐 입을 기회가 있지만 인생살이는 그렇질 못하다. 남을까 떠날까, 지금할까 나중에 할까, 전화를 걸어 볼까 말까, 갈까 가지 말까, 줄까 주지 말까, 만날까 만나지 말까, 패스를 할까 그냥 슈팅을 할까, 직구를 던질까 번트를 댈까, 사표를 낼까 그냥 더 견뎌 볼까?......  끝 없는 물음표에 우리는 날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윌러스(G wallas) 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고민거리로부터 일시적으로 몸과 마음이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처럼 부화(孵化)를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풀리지 않는 일을 아무리 고민 해봐야 우선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이미 머릿속이 멘붕 상태로 하얗게 비어 있으니까 말이다. 남을 가르치거나 지시 명령하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 은퇴하면, 지난날 자신이 살아왔던 길처럼 매끄럽지 않아, 한동안 ‘중심잡기’ 가 만만치 않다. 고위 공무원, 교수, 회사 임원 군대의 장군, 정치인 같은 사람들이 일평생 걸어 왔던 길과 다른, 가지 않았던 길로 방향전환을 해야 할 때 힘들어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바뀐 것을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맨날 했던 이야기만 하고 또 하고 있다.
 
그리하여 ‘가지 않는 길’ 을 새로이 시작하려면, 옛날 그 사람들은 빼고 전혀 다른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새로운 길을 엿 보아야 한다. 늘 다녔던 장소나 길을 피하고 역주행 하면서 생각을 바꾸어 취미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대하여 흥미를 갖고 사는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무도 나를 위하여 존재 하지 않기에 내가 세상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길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을까?
 
산(山) 은 늘 그 자리에 있을 뿐, 우리가 다가가야 하는 존재이듯 사람도 서로가 그렇게 다가서야 할 것이다. 노을에 산마루에 걸린 태양을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산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 당신은 고생하고 있는가?  빨리 지나간다. 지금 당신은 몹시 행복에 겨워 하는가? 그것은 더 빨리 지나간다. 지금 빛나는 청춘인가?  미안 하지만 쏜살같이 지나간다. 
 
빨리 지나간다는걸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어른이 된 것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苦行) 이라고, 행복은 가끔 먹는 ‘초코릿’ 같은 것이라’ 고 그랬다. 우리는 괴로운 세상에 살고 있기에 ‘가지 않는 길’ 도 가끔은 가 봄직 할 것 같다. 사람은 늘 흔들리며 사는 것이라서, 잘못된 인연은 상처가 되지만 좋은 선택은 노래가 되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한 발자욱씩 밟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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