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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출산 장려정책 보다 시급한 '해외입양'
출산 장려정책 보다 시급한 '해외입양'
기사입력: 2006/01/23 [16:4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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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만 특파원
 
 

[e조은뉴스 = 하트만 특파원]  한국에 해외입양아를 탄생시킨 해리홀트. 그는 고아들을 위해 가족을 이어주는 가교역활을 하고 있는 한국 국제 입양기관을 발촉, 국제입양국으로 만든 창시자의 이름이다.
 
1950년대 돌보아줄 사람없는 그야말로 천지간에 오갈데 없는 한국 고아들을 대상으로 시작 된 사업이다. 당시만, 10만이 넘는 한국의 고아들이 미국으로 향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한국, 중국, 러시아, 에콰도르, 과테말라 홍콩, 인디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등지의 국가들과 미국내의 입양을 주선하는 굴지의 입양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텅 비어버린 맘, 휑하니 뚫혀진 그들의 마음은 입양을한 부모와의 관계나 갈등 지위를 떠나 생모와 생부를 만나야만 그 순간에 가서나 그들의 가슴이 메워질 수 있다.  
 
과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단체를 창설했을까? 해리홀트의 저서의 한구절 “마음을 여십시오. 당신의 대문을 활짝 열어 집없는 아이들을 불러 들이십시오.”라는 메세지에서 보여주는 바와같이 해리홀트의 이같은 시작의 의미는 바로 전쟁고아들을 비롯,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족”을 이루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가족은 사실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최상의 울타리이다. 얼마나 그 당시 고아들에게는 간절하고 고마운 단체였을까? 그러나 55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계속되어오는 해외입양을 고맙게만 느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더구나 해리홀트의 뜻이 고아들을 위함에 목적을 부여했으며, 현재 홀트의 본사조차 “해외입양은 보살필 사람없는 고아들을 대상으로 하며, 어느 정부의 어떠한 관여나 참여나 간섭을 불허하고 있다” 라고 홈페이지 첫면에 밝히고 있다.
 
하지만 본국의 홀트와 정부의 2002년 입양규제 정책으로 고아가 아닌 편모, 편부 슬하의 자식들이거나 부모가 존재하는 이들의 자식으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해외 자격이 된다고 명시하였으며, 국내입양을 쿼터제로 겉으로는 국내 입양을 활성화시키는 듯 하지만 국내 입양 건당 해외 입양야들의 입양을 할 수 있는 입양기관에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조건이 이렇게 달라지자 지난 2005년 KBS에서 집중 보도하였듯, 입양아들을 확보하기 위해 태어난 아가의 생부 또는 미성년자가 생모인경우 가족들의 입양합의서에 사인을 요구 마취에서 깨지도 않은 미혼모에게까지 사인을 강요하는 사례까지 벌어지고있다. 미혼모 또한 기르고 싶으나 현실적 문제인 복지정책이 간구되지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포기하며 해외입양아라는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한국에서 국내입양에 대한관심이 높아지고 해외입양아들이 성장하여 해외입양인으로 바뀌자 미국입양아 단체들도 한국을 알리는 행사와 한국 견학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1950년대는 물론 90년대 초까지 만해도 해외로 입양되어간 입양아들이 어디로 입양을 갔는지 또 어디에서 누구에게 보내지었는지 상세히 알수가 없었다.
 
▲자료를 위해 한국에 나가 생모를 생부를 찾고자 서류를 요청하는 이들에게 “자료가 불타 없어졌다. 고아원이 타버렸다”라는 말도 않되는 답변만    

특히나 50년대 부터 80년대사이의 입양아들이 입양인으로 성장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위해 생모나 생부를 찾기위해 한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이들 중 부모 중 누구를 찾는 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는 입양 당시 서류 작성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자료를 위해 한국에 나가 생모를 생부를 찾고자 서류를 요청하는 이들에게 한결같이 “자료가 불타 없어졌다. 고아원이 타버렸다”라는 말도 않되는 답변만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 미국 입양인은 본국을 찾아 기록을 요구하였으나, 역시 위와 같은 대답만을 받았다. 이에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입양되기 전, 고아원을 수소문한 끝에 화제로 소실되었다던 고아원을 찾을 수 있었다는 고백을 접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는 미국 보다 프랑스나 그외로 보내지는 입양아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미국이 아닌 타국으로 입양이되는 경우 타국의 입양단체의 한국을 알리는 문화행사나 그밖의 교육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탄핵으로 뭍혀버린 고경화의 원의 국정질의에 이의를 제기한 한 한국입양아 출신 프랑스인인 에릭은 입양기관에서 입양아들의 주거를 확인함에 드는 비용을 산출해 입양 비용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입양기관은 그같은 책임을 무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입양아들은 현재 본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될지언정 부모를 찾겠다는 입양아인들로 미국이나 프랑스등 각지의 입양인들 소식을 전해받고 있다. 그간 계제해오던 입양기사에 대해 본사와 KBS, 모뉴스의 불상사를 계기로 접엇던 이 문제를 다시 다루면서 첫 기사 작성 당시 인터뷰를 모아본다.
 
“본국은 해외에 얼마나 많은 입양아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유명해진 입양아들만을 그들의 핏줄인양 인정하려든다. 더우기 안티 아메리카를 부르짖던 본국의 반미주의를 가진 이들은 우리가 미국에서 얼마나 힘들게 적응하고 있는지 알려고하지도 않으면서, 그나마 우리가 어렵게 쌓아놓은 인맥에 채찍을 가하기도 하였다”라고 텍사스의 항공사에 근무하는 앤젤라 (당시 26세)는 말했다.
 
그녀는“해외 입양이요? 절대 반대입니다. 가깝게는 일본 심지어 비난받는 북한도 안하는 짓을 한국, 내조국이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입양아들에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모순아닙니까?”라고 명확한 해외입양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서 입양한 2명의 자녀를 두었던 바이올라(전직교사 당시 72세)여사는 "4살짜리 남아와 6개월짜리 여아를 입양하였으나 여아가 3세되던 해 그 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30대후반에 사랑하는 딸을 보낸 바이올라 여사는 “내 가슴에 살아있는 그 아이 루쓰의 이름을 막내 딸에게 다시 그 이름을 주었다. 하지만 내게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6개월짜리를 비행기에 태워오며, 그 갓난 아기가 장거리 비행으로 겪었던 고통이였다. 난 그애가 떠난 뒤 죄책감에 살고있다. 더이상 1년도 안된 아이들이 그 머나먼 타국 땅으로 그렇게 보내져서는 않된다”라며 한국의 무책임함을 탓했다.
 
서류만 처리되면 연령에 상관없이 조국을 등지고 떠나야했던 아이들. 그들 앞에서 감히 우리는 행복을 논할수 있을가? 그누가 해외입양아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을까? 텅 비어버린 맘, 휑하니 남은 동공을 지녀야하는 그들의 마음은 입양을 한 부모와의 관계나. 갈등, 지위를 떠나 생모와 생부를 만나야만 그 순간에 가서나 그들의 가슴이 메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한국정부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외로 나가야 하는 해외입양인들을 한국 정부가 앞장서 보건복지부가 앞장서 해리 홀트의 “마음을 여십시오. 당신의 대문을 활짝 열어 집없는 아이들을 불러 들이십시오”라는 말을 왜? 하지 못하는 것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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