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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료칼럼-처녀막, 무엇을 막고 있는가?
기사입력: 2005/12/30 [17:0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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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옥산부인과 원장 / 전문의

어느 날 중학교 2년생의 참한 여학생 한 명이 배가 아프다며 진료실로 찾아 왔다.
 
내과에 들렀다가 자궁에 혹이 있는 듯하다며 산부인과로 진료의뢰가 들어 온 것이다.
 
초음파를 갖다 대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알 만해야 할 자궁이 임신 4~5개월 정도의 크기로 커져 있는 게 아닌가.
 
자궁벽은 얇아져 있고 자궁 속은 시커먼 음영의 물질로 꽉 차 있었다.
 
학생엄마에게 마지막 생리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아직 초경이 없다한다.
 
그럼 진단은 십중팔구 ‘무공 처녀막(imperforated hymen)증’. 진찰대에 눕혀 진찰해 보니 역시 처녀막이 막혀 있었다. 
 
몇 년을 두고 배출돼야 할 생리가 처녀막에 막혀 못 나오고 있으니 자궁이 점점 커지고 배가 아플 수밖에... 생식기기형아라는 진단에 두 모녀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치료는 의외로 간단하여 국소 마취 후 처녀막절개술을 시행해 주면 끝이다.
 
처녀막은 질의 입구를 부분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초승달 모양의 점막이다.
 
침팬지나 고릴라 등 유인원 암컷의 생식기에는 인간여성의 처녀막과 유사한 구조가 없다.
 
장이나 편도선보다 쓸모없는 처녀막이 인류의 암컷 조상에게만 진화된 이유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처녀막의 크기, 모양, 두께는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성교 시 질 내로 관통될 때 쉽게 늘어나거나 찢어진다.
 
이때 소량의 출혈을 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처녀막 파열로 여성의 순결을 상징하는 징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처녀막은 심한 운동이나 탐폰 같은 생리대를 사용할 때 파열될 수 있고, 출생 시부터 처녀막이 없는 경우도 있다.
 
대개 질 입구를 덮고 있지만 2,000명의 한 명 꼴로는 위의 학생처럼 질의 입구를 완전히 막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처녀막의 존재로 여성순결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남성들은 좁은 질 입구와 깨끗한 혈흔이 처녀성의 증거라고 생각하며 신혼 초야에 처녀막이 파열되면서 출혈이 되지 않는 여자들의 정조를 의심한다.
 
가끔 처녀막재생술을 문의해 오는 분들이 있다.
 
병원에 오기까지 그 사연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공통된 하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순결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치료의 내용도 자연히 성교 시 출혈이 있게 하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질이 늘어나면 처녀막을 원래대로 복원시켜도 성교 시 출혈이 없을 수 있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이러한 시술은 누구도 탓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적지 않는 남자가 순결한 부인을 의심하고 있고, 또 적지 않는 남자가 순결하지 않은 부인에게 속고 있다.
 
순결이 무엇인가?
고작 성교 시 출혈이 보이는 것이 순결인가? 남성의 잣대에서 순결이 그런 것이라면, 여성의 순결도 그래야 하는가? 처녀와 비처녀 사이에 해부학적으로 아무 쓸모없는 초승달 모양의 점막조직 하나가 막고 있다고 믿는다면, 이 조직이 막고 있는 것은 평등하고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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