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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정현근 의원 큰일났네
기사입력: 2005/07/29 [19:2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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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
1970년대 말, 박정희의 독재가 극에 달하던 무렵이었다. 전화연락을 통해 만난 일행 셋이 목적지를 향해 전철을 타고 가는데 조금 떨어져 서있는 누군가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전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같은 노선의 다음 전철을 탔다. 오잉? 잠시 후에 살펴보니 갈아탄 전철 안에 그 작자가 또 서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다음 역에서 전철 문이 닫히기 직전 뛰어내린 뒤 떠나는 전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박정희가 군사독재를 18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국민통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계엄령, 위수령, 긴급조치... 그의 통치기간 중 절반(48%)을 국민들은 ‘비상(非常)시국’에서 살았다. 학교 휴게실에 필통분실 공고를 붙이려 해도 학과장, 학장의 도장을 받은 후에야 붙일 수 있지 않았던가. 정상이 아닌 시간들. 늘 통제받던 시간들. 감시, 도청, 미행의 시간들... 그의 아우들 전두환, 노태우 때는 별달랐겠는가. 그것이 그들의 정권유지의 기초가 아니었는가 말이다.

박,전,노 정권은 한 빛깔이니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 등 이름은 바뀌었어도 그 속에서 일하던 인적자원이나 하는 일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터이고, 따라서 국정원직원법도 그들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정권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국정원 내부의 직원들이 겪었을 그리고 겪고 있을 갈등과 혼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겠다.

박, 전, 노 때 그들은 국가와 정권의 안보가 일치하다고 믿도록 훈련되었을 것이다. 도청과 감시의 대상은 주로 정권에 반대하는 야당인사들 일변도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하는 일은 대상(적)을 구별하기 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안기부가 창설된 이래 재야인사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그들이 존재이유였고 그들의 일상이었을 터. 미림팀이 노태우 정권시절에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국내사찰의 역사는 훨씬 오래전, 5·16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직후인 1961년 중앙정보부의 탄생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사정은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청시스템은 계속되고 있는데, 대상이 180도 전면에 있던 자들이 아니라 이전의 아군이었던 후방 180도까지 포함해 360도 전방위로 확산이 되었을 터이니 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아군과 적군을 가를 수 없는, 360도로 빙빙 돌며 모두에게 도청장치를 들이대야 했던 그들은 때로 이전의 상관이었던 정형근 같은 자에게 목구멍을 깊게 열어주어(deep throat/ 딮 쓰로트) 빨대를 허용하기도 했겠지만 그들의 황당함, 외로움, 혼란, 두려움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을 것이다.

정권이 지속되고 있을 때라도 김형욱 같이 입 안의 혀처럼 굴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독립된 혀를 가지고 함부로(?) 처신하다가는 결국은 아무도 모르게 처치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들이니 정권교체의 의미가 점점 뼛속 깊이 새겨지고 있는 지금, 그들은 음지 속의 음지 사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도 아울러 느끼는 모양이다. 아군이 칠지 적군이 칠지 그들도 잘 모를 테니까.

어찌되었건 이제 음지 속 깊숙이 감추어져있던 비밀의 상자가 열렸다. 하나가 풀어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비상(非常)의 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어차피 딮 쓰로트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정형근마저도 빨대가 너무 많아졌다고 불평하던 마당이 아닌가. 360도, 전방위를 도청하고 감시하다 보면 비밀의 상자 뚜껑의 나사는 헐거워지기 마련이다.

아... 이제 음지 속 음지, 비밀의 상자에도 햇빛이 비추이는 모양이다. (정형근에게는 아쉽겠지만 어쩌겠는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정권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비밀의 상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열릴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애초부터 타고난 것을...그러게 빨대로 빨아 먹고 나서 입 냄새를 아예 풍기지 말던가.)

국정원의 진정한 힘의 원천으로 불리워졌다는, 미림팀을 운영했던 음지 중에서도 음지였던 과학보안국(8국)은 2004년 신건원장에 의해 해체되었다.

그러나 국정원 대공정책실장 보좌관이었던 김기삼씨는 앞으로도 정치사찰에 이용해서는 안 되지만 국가안보를 위해 간첩을 잡는 데에는 여전히 도∙감청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의 충정은 얼핏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정치와 안보 문제가 어디 각각 분리될 수 있는 문제던가. 거추장스러운 상대 대통령 후보도 간첩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실력’ 이었는데 말이다.

도청전문인 미림팀을 총괄하다가 국정원을 나온 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개인 후원회인 부국팀에서 조직 관리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청년 비선조직인 청죽회 회장을 맡았었다는 공운영. (그는 똥 묻은 조선과 동아가 겨 묻은 중앙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밀이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죽음으로 사수하려 했을까)

안기부에서 일하다가 삼성맨이 되었다가 다시 안기부로 돌아왔다가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거리에서 반공궐기대회를 주도하기도 하는 이동복. ‘수많은 그들’은 정보기관-재계-정계-언론계-학계로 왔다 갔다 하며 쳐놓은 그물망을 통해 대한민국의 운명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오호라... 그래서 그들(정계-재계-언론계)은 서로 서로 손을 놓지 못하고 정권교체를 그렇게도 악착스레 목숨 걸고 막으려고 했던 것이군.

이제 정당개혁으로 기업의 돈은 정계로 더 이상 유입되지 못하게 되었다. (당비를 내는 기간당원제가 그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더러운 기득권자들의 연대를 끊고 싶은 시민들이여! 정당으로 어서 어서 쳐들어오라! 매달 당비를 내고 감 내놔라 배 내놔라 간섭하는 당신들이 당원이 되어 주인노릇을 하면 어찌 정치권력이 돈과 굽은 펜대에 이리 저리 휘둘리겠는가!)

이제 더 이상 재계가 돈으로 정계를 쥐락펴락할 수 없게 하자. 이제 정치권력은 재벌과 확실하게 손을 끊고 재벌의 소유구조를 개혁하고 경영을 투명하게 할 일이 남아있다.

확실한 언론개혁법으로 언론사주가 정계를 쥐락펴락할 수 없게 개혁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범죄들의 공소시효를 대폭 연장하여 온 갖가지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소수의 끝없는 탐욕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얏호!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이렇게 신이 나는 일이다. 어정쩡하게 상생과 화합을 외치지 말고 또박또박 진도 좀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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