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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탐방하는 울산의 명승, 유적지 14
울주 언양읍성(蔚州 彦陽邑城)
기사입력: 2022/07/22 [17:2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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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용 울산문화관광해설사     © UWNEWS

언양읍성(사적153호)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언양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를 간단히 돌아보고자 합니다. 

 

언양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지산에서 발원한 태화강 상류의 물이 흐르는 천혜의 땅으로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 흔적을 KTX울산역 부근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 천전리 청동기 유물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동으로는 울산, 서로는 밀양, 남으로는 양산과 부산, 북으로는 경주를 잇는 교통과 물류의 허브(HUB)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역사적으로 행정구역변경에서도 드러납니다. 

 

신라 시대에는 거지화현에서 경덕왕 이래, 양주를 속현으로 헌양현으로 불리었습니다. 

 

고려 현종 때 울주 속현으로 있다가 인종 때는 감무를 두면서 주현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울산이 도호부로 승격되자 그 소속으로 있다가 곧 독립적인 현이 되었으며 고종 때는 언양군이 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초기 다시 울산에 통합되었습니다.

 

 

 

울산지역은 왜침이 용이하여 예로부터 군사 국방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가히 성곽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성곽들이 산재하고 있습니다. 

 

이 언양읍성은 고려말 왜구가 휩쓸고 간 직후 공양왕 2년(1390년) 둘레 1527척, 높이 8척의 토성으로 축조되었습니다.

 

조선조(세종대왕) 초기 외적에 대한 방비가 필요해지자 전국 중요지역에 성을 새로 쌓거나 보완하는 작업이 있어 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연산군 6년 (1500년) 당시 현감 이담룡이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정사각형에 가깝게 둘레 3,064척(약1,720m), 높이 6.4m, 약 42,000평으로 증축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조는 조선 전기 읍성의 일반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성곽의 각 면에 치성을 두었고, 성벽의 각 모서리에는 각루를 세워 보초가 망을 볼 수 있게 하였으며, 각 성문에는 옹성을 덧붙여 성문 방어를 더 굳건히 하고자 하였습니다. 

 

또 성 주위에 너비 약 5m, 깊이 170cm의 깊은 도랑, 즉 해자를 파고 목익을 심어 외적이 성곽에 쉽게 접근하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또 내부의 구조와 배치를 보면, 동쪽에는 동헌을 두어 현감의 집무 공간이 있었고, 아전들이 업무를 보던 작청, 서쪽에는 출장 관리들의 숙소 역할과 국가의 중요한 날 등에 전패를 모시고 임금에게 배례를 올린 객사 등 주요 건물들이 동문과 서문 아래로 밀집되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사방 문루에 다소 낭만적인 명칭을 붙이기도 하였는데, 원래 남문 이름은 일반적인 예에 따라 진남문이라 하였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 꽃이 연못에 비친다는 뜻의 영화루로 고쳐 불리었고, 동문은 달을 바라보는 망월루, 서문은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애일루, 북쪽 문은 하늘이 열린다는 의미의 계건문으로 불리었습니다.

 

지금도 동문과 서문을 가로질러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 물은 상북면 천전리의 상북교 근처에 있었던 부리보(저수시설)에서 흘러 왔는데, 이를 이용해 인근 주민들이 언양미나리를 키우기도 하였습니다.

 

일제 초기 일본은 강점과 동시에, 경향 각지의 성곽을 그들의 경제적 침탈을 위한 개발과 과거 역사 지우기의 목적으로 파괴를 하였습니다. 

 

이 언양읍성도 성내의 건물들을 철거한 자리에 그들의 식민지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고, 홍수가 났을 때는 많은 성곽의 돌들이 가까운 남천 제방을 쌓는 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시 당국은 종합 정비계획 아래 이 읍성의 복원으로 언양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관광 자원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발굴조사를 거쳐 남문인 영화루를 복원했습니다. 

 

객사 자리였던 언양초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긴 후 교사와 체육관 등을 철거하였고, 그 구역도 발굴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앞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연차적으로 기존 성내 거주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성내 주요 시설 복원과 일부 공간에는 체험공간 등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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