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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긴 장마 - 김성철
기사입력: 2022/06/10 [15:3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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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마 - 김성철

 

스무 살쯤 된 김치 냉장고가 먼저 누웠다

따라 누운 건 열 살 된 냉장고

세탁기가 불타오르는 걸 발견한 이는

사회봉사자였다

일정이 빡빡한 그녀는

새벽 5시 반 코로 타는 냄새를 맡았다 한다

누전차단기는 자꾸 떨어지고 빗물은

구석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달려오고

새로 들인 김치냉장고 양문냉장고 통돌이 세탁기는

온몸으로 빗물을 죄다 받았다는데

 

기르던 개 감자가 목줄을 풀고 나갔고

여든 넘은 여인은

나간 개는 복이라며 찾지 않고

얼룩무늬 도둑고양이가

감자가 나간 자릴 차지하고

 

야야 또 잊어버렸다

복숭아랑 김치랑 줘야는데 자꾸 깜빡한다

김치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감자도 나가고

빗물만 자꾸 들어온다 누전도

따라 들어왔네

 

엄마 괜찮아

다 똑같이 늙어도

엄마만 말짱해

지마켓도 11번가도 쿠팡도

엄만 안 팔더라

 

긴 장마가 오고

귀청엔 뚝뚝 떨어진 빗방울만

가득하고

계간 『발견』2020년 가을호에서

 

 

김성철 시인의 시 「긴 장마 」를 읽다가 〈지마켓도 11번가도 쿠팡도 / 엄마만 안 팔더라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쓸쓸함, 외로움, 고독, 서러움, 사람이 표현할 그 어떤 감정의 골을 다 파헤쳐 놓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렇다. 팔 수도 없고 팔아서도 안되는 마음이 인간적 모성이다. 많은 시들이 쓰이고 많은 시집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는 인간성을 바라보는 기준을 어디에 놓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시를 읽으면 시인의 삶과 철학이 보인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보인다. 긴 장마가 오니 스무 살쯤 된 냉장고가 먼저 눕고, 열 살 된 냉장고가 따라 누웠다는 것, 그러니 그 집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 변두리 혹은 판자촌 집이라는 게 드러난다. 더 확실한 것은 사회봉사자가 새벽 5시 반에 코로 타는 냄새를 맡았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 데 무엇이 불에 탈까 싶지만,  빗물에 타는 냄새를 풍겼다면 그것은 크나큰 사고가 발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세상의 모습을 보통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ㅇ이 있지만, 모순덩어리들은 꼭 무심한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긴 장마 든, 긴 가뭄이든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잊힌다. 그 시간에 아픔을 느낀 사람의 눈에 든 눈물도 마른다. 그런 아픔의 장마를 보낸 시간인듯싶다.

 

 

 

 시인 임영석

 

 시집 『받아쓰기』 외 5권

 시조집 『꽃불』외 2권

 시조선집 『고양이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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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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