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민/이상민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UWNEWS |
|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82년생 김지영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역사적 연대기를 그립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지극히 평범한 서사의 한 축에,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담담히 담고 있습니다. 극도로 우경화된 우리 사회는 그들의 이야기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인지에 관해, 그 누구도 본질을 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화가 끝내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 우리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옵니다.
영화는 다종다양한 세태를 보여줍니다. 가령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일, 그것으로 모자라 그 촬영된 사진을 직원들이 돌려보며 웃어대는 일,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돌아왔더니 자신의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일, 남편이 육아휴직을 사용한다고 말하자 도리어 시어머니가 펄펄 뛰는 일, 아이와 함께 공원을 거닐던 엄마에게 세상 참 편하다고 말하며 비꼬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 할 수 없는 그 엄마의 일까지,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아니 현실은 그 모든 것을 담담히 풀어내며, 공존할 수 없는 감정들을 배반하고 미끄러져 나갑니다. 우리를 키워 낸 어머니들은, 우리보다 더한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다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역시 각인시킵니다.
위와 같은 문제들은 자칫 사회적, 법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농후합니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차별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며, 몰래카메라 촬영은 주지하듯 ‘성범죄’이고, 사람 많은 카페나 인터넷에서 타인을 욕보이는 것은 ‘형법’ 등의 모욕죄나 명예훼손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법대로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의 문제도, 교육의 문제도 아닙니다. 윤리의 문제입니다.
나는 그들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슬픔이 나의 현실과 등가 교환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교환이 또 다른 복수의 서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끔찍하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이 무작정 비난받을 이유는, 또한 없을 것입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았다는 무의식의 서사가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누군가의 누나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누군가의 오빠로서, 누군가의 아들로서. 껍데기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 새겨진 당신들의 마음과 인생을 연구해야 할 시대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이것은 법이나, 제도 혹은 교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윤리의 문제입니다. 기존의 법과 제도는 현상을 포착해 그 현상의 해결을 탐구하지만, 우리의 윤리는 그 현상의 기저에 쌓인 본질을 탐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흡사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던진 질문의, 본래적 의미를 찾아내야 하듯 말입니다. ‘너는 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그 이상한 울림을, 비로소 감상할 수 있는 윤리가 유행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