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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탐방하는 울산의 명승, 유적지 24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1)
기사입력: 2023/02/01 [16:3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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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송화 울산문화관광해설사     ©UWNEWS

서생포왜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성(城)이다. 

 

이 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선조26년) 5월부터 ‘축성의 달인’이라고 불렸던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돌로 쌓은 16세기말의 일본식 성이라고해서 ‘왜성’이라고 한다.  

 

평야지대와 산등성이를 연결하여 만든 평산성(平山城)이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까지 진격했다가 후퇴하여 내려온 후 인근의 숙마성과 수군만호진 등지(等地)에서 가져온 돌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전 지역을 거의 통일한 직후라 그들의 힘을 어느 정도 소모시켜 정권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고, 그리고 공신들에게 영지를 분급 해주는 등의 계획을 세웠으나 형편이 여의치 못하였다고 하며, 또한 이들의 불만을 해소해 줄 새로운 식민 영지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실제로 조선 침략 전에 이미 누가 어느 땅을 가질지 정해 놓고 쳐들어 왔다.

 

1592년 4월 약 18만 여명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읍성을 함락시키고, 20여일 만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점령했다.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한 가운데 당시 임금인 선조는 의주(義州)까지 피난을 가고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조명(朝明)연합군과 조선수군의 반격과 함께 그리고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으로 전선이 밀리게 되자 왜군은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만든 게 동남해안의 왜성들이다. 

 

전쟁 초기에는 거제도에서 서생포에 이르는 남해안가에 성을 쌓아 주둔하기 시작하여 1597년 정유년에 재침한 왜군은 또 전라도 순천에서 울산에 이르기까지 30여 곳에 그들의 성을 구축하였다. 

 

 



 

* 서생포왜성의 규모

 

서생포왜성은 진하해변과 회야강(回夜江) 포구를 끼고 해발 133m 고지의 산정(山頂)에 내성(內城)을 쌓고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2단, 3단의 여러 구역(曲輪)으로 나누어 놓았다. 

 

다단식 구조는 적의 공격 시 제1선의 전투를 2선에서 지원하고 1선이 붕괴되면 신속히 2선으로 후퇴하여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소규모 병력으로도 여러 차례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처음부터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그리고 산 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외성(外城)을 배치하였고, 성벽 밖에는 2중 3중의 다양한 호(壕)를 둘렀다. <다음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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