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탐방하는 울산의 명승, 유적지 10
태화루(太和樓) (2)
 
UWNEWS 기사입력  2022/04/29 [16:38]
▲   태화루  © UWNEWS

 

 

 

▲ 권태성 울산문화관광해설사     ©UWNEWS

둘째, 최전성기 시절 울산의 영광을 누각으로 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태화루 누마루 면적은 약70평(21.6m×10.8m)이며 영남루와 촉석루 보다는 약간 큰 규모입니다.

 

이 누마루에는 36개의 배흘림기둥이 서 있으며,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중간이 굵고 위 아래로 갈수록 점차 가늘게 만들어진 기둥으로 구조상의 안정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무위사 극락전, 화엄사 대웅전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36개의 배흘림기둥이 줄지어선 사이로 걸어가면 마치 궁궐의 회랑을 걷는 느낌입니다.

 

기둥이 좀 많아 복잡해 보이나 익공양식을 적용한 촉석루와 영남루와 달리 태화루는 국내 누각 가운데 드물게 주심포 양식을 적용했습니다.

 

누마루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마룻대 아래 대들보에 그린 용과 학이 눈에 들어옵니다.

 

용은 황룡을 중심으로 네 마리의 용이 있는데 가운데 황룡은 용금소를 지키는 황룡을 상징하고 동쪽 청룡, 남쪽 붉은룡, 서쪽 백룡, 북쪽 흑룡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학 두마리는 울산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태화루의 단청은 대체로 청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 녹색과 붉은색이 가미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청색은 단아한 느낌을 주지만, 너무 강하면 어두운 빛을 띄기 때문에 녹색과 적색의 색깔을 가미한 것입니다.

 

영남루와 촉석루의 화려함을 덜어내면서 한편 고려말 조선초의 단청양식을 따랐다고 합니다.

 

누마루에서 마당으로 나오면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지붕 처마 끄트머리에 눈에 익은 기와가 보입니다.

 

바로 처용설화속의 “처용”의 얼굴입니다.

 

“사래기와”라 불리는 이 기와는 귀면을 조각해 넣거나 별다른 무늬 없이 마무리 하는 것이 보통인데 울산의 대표 설화인 처용을 새겨넣었습니다. 울산사람의 관용과 베품의 상징입니다.

 

태화루 마당에서 보이는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주초석”입니다.

 

장주초석은 땅으로 부터의 습기를 피하기 위해 초석의 키를 높인 것을 말합니다.

 

누각건물은 처마를 아무리 많이 내더라도 건물자체가 높기 때문에, 1층 기둥에는 비를 뿌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1층 기둥이 자주 썩기 때문에 장주초석을 사용합니다.

 

태화루의 장주초석은 40개인데 8각으로 빚은 장주초석은 한 개당 무게는 7t 정도 나갑니다.

 

익산시 황등면에서 가져온 돌이라서 “황등석” 이라고 불립니다.

 

태화루 현판은 3m×1.1m 크기로 정면의 한자현판은 울산박물관 소장 현판을 확대 모사한뒤 각자 한 것 이며, 북쪽 한글현판은 자랑스런 학글학자인 외솔 최현배선생님의 고향인 울산의 한글사랑을, 태화루 현판에 새겨 넣었습니다.

 

셋째, 울산의 미래가 태화루에 담겨 있습니다.

 

1962년 정부는 전국에서 최초로 대단위 공업단지를 조성, 정유,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비료, 비철금속 등 수 많은 공장들이 울산에 세워지기 시작하였고, 울산 공업탑에 있는 비문의 문구처럼 그 후 검은 연기가 울산을 뒤덮으며, 눈부시게 발전하여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울산은 산업수도의 위상에 걸맞게 공업도시로서 몰라보게 발전하였지만 반면에 사람들이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공기가 매우 혼탁한 환경오염 도시로 변해있었고 울산을 찾는 방문객들조차 다녀가기 꺼려하는 곳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울산 태화강 수질 역시 각종 오염으로 인해 더 이상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는 죽음의 강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태화강을 살리기 위한 울산시와 울산시민들의 자연환경 복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은 태화강과 십리대숲에는 여름 철새인 수 천마리의 백로와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 십 만마리가 멀리 동남 아시아와, 북쪽의 몽고 북부 시베리아지방에서 날아와 둥지를 트는 최대 규모의 철새 도래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강에는 황어와 은어가 매년 태화강으로 돌아오고 있고 수달과 삵이 서식하는 생태의 요람이자 생명의 강으로 완전 탈바꿈 하였습니다.

 

태화루 역시 2014년 4월25일 507억원 사업비로 누각을 복원하였는데 그 중 100억원은 S-OIL에서 건립비로 기부하여, 태화루 최고의 전성기인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의 누각으로 재 탄생하여 울산시민들 곁으로 돌아왔으며 이제는 태화루가 태화강 국가정원의 중심축에 위치, 태화강 조망거점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울산시민들을 위한 문화행사가 주말에 많이 이뤄지고 있어 문화교류의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 옆에 태화시장 장날이면 친구와, 가족이 삼삼오오 올라와서, 서로 사는 이야기, 물건 산 이야기 등... 다정스런 말들이 오고 가며 정을 나눕니다. 

 

태화루 상량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누각에 올라 피리 한곡을 불면 세상의 근심이 사라지고


이 누각에 올라 시 한 수를 읊으면 천하의 문사가 귀를 던지게 되고


이 누각에 올라 그림 한폭 그리면 동서양의 화가들이 붓을 꺾게 되어


이 나라 평화통일의 초석이 되게 하고


산업수도 울산이 문화와 예술의 수도까지 겸하게 하옵소서.”

 

 

이제 태화루는 울산의 상징으로서, 울산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려, 울산시민들의 문화적 역사적 자긍심을 고양하여, 태화루를 문화 예술 교육과 휴식의 공간으로 거듭남으로써 과거 1,500년의 영광과 다시 새로운 미래, 1,500년 후의 울산의 번영을 꿈꿀 것입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기사입력: 2022/04/29 [16:38]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