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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800km 산티아고 순례길(6)
“순례 길, 어쩌다 서리의 유혹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길이 되었나?”
 
UWNEWS 기사입력  2021/03/23 [12:25]

 

[울산여성신문 정은주 객원기자] 에스테야 알베르게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침낭 개는 것은 아직도 서툴지만 꽁꽁 눌러서 배낭에 말아 넣고 출발하기 위해 채비했다. 침낭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침낭은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 가야 했으니 적으로 둘지 동반자로 둘지는 나에게 달렸다. 어쨌든 어제보다 가까워진 배낭 속 동행자들과 알베르게를 나섰다.  

 

여전히 쾌청한 날씨였고 거리에 표시된 온도를 보니 9도였다. 전날에 모자도 구입했으니 이제 스페인의 따가운 햇볕도 견딜만하겠다. 근처 바(Bar)에 들러 크루아상 한 개와 오렌지주스로 아침을 먹었다. 주문하면 즉석에서 갈아서 주는데 아주 달고 맛있어서 매일 한두 잔씩 챙겨먹었다.

 

 

걷다 보면 대장간이 있는데 근처 이라체수도원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던 곳이라고 한다. 선량한 인상의 대장장이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쇠를 달구어 탕탕 내리치고 있었다. 조가비, 십자가, 포도나무 등등 여러 모양의 작품들이 마당에 전시돼 있었다.

 

쇠는 담금질과 벼름질의 과정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풀무 불에 달군 쇠는 차가운 물에 넣었다가 다시 뜨거운 불에 던져지는 담금질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단단해진다. 서서히 식히면 무른 쇠가 되기에 뜨거운 상태에서 냉각을 한다.

 

하지만 반드시 휘어지고 일그러진 쇠를 다시 펴주는 벼름질도 해주어야 한다. 불에 나오자마자 바로 차가운 물에 넣으면 쇠가 유리처럼 쉽게 깨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쇠는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고 매만짐으로써 펴지며 차가움도 겪고는 또다시 불에 던져짐을 이겨내고서야 비로소 다시 태어난다.

 

장인의 솜씨로 연단되는 동안 그 놀라움의 연속을 잘 견뎌낸 작품들을 보니 귀하게 보였다. 순례 길의 상징인 조가비 모양 작품을 기념품으로 샀더니 십자가 모양을 덤으로 챙겨주셨다. 기대하지 않았던 덤이라 더 감사했다.

 

이 부근에서부터 스페인의 최대 포도주 생산지라고 한다. 포도주는 예전 수도원에서 많이 제조하게 되었는데 경기도에서 왔다던 신부님 얘기에 의하면 수도사들의 하루는 기도와 노동의 연속이라고 한다. 대량으로 재배하기에 질 좋은 포도주는 수도원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언뜻 술 취함에 대한 선입관과 디오니소스가 연상되어 수도사와 포도주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아는 것이 작은 조각에 불과하니 이해도 제멋대로다.

 

걷다 보면 순례자들 사이에 유명한 이라체수도원이 있는데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한쪽에서는 물이, 한쪽에선 포도주가 주르륵 나온다. 과거 순례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제공하던 전통을 이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하루에 한정된 양만 나오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다른 목마른 여행자를 위한 예의일 것이다. 근처 와인박물관에서는 와인 제조의 변천을 볼 수 있었고 지하에 와인 숙성 저장고도 있었다. 길 건너에는 이라체양조장이 있었다.  

 

 

 

다시 길을 걷자니 울타리도 없는 포도밭에서 까맣게 잘 익은 포도가 주렁주렁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포도를 맛보고는 아주 맛있다고 했다. 손만 뻗으면 된다고 나를 향해 유혹하는 듯했다. 식탐이 없다고 여겼는데 나조차 나를 오해했는가보다. 할 수만 있다면 포도송이들을 눈에서 치우고 싶을 정도였다.

어쩌다가 순례 길이 서리의 유혹을 물리치느라 난감해하며 나아가는 길이 되었나! 야속하게도 포도밭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순례 길인데’ 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향해 단속을 한 것일까? 주인을 만나면 사먹어야지 하고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순례 길이 끝나도록 포도밭 주인을 만나지 못 하였기에 달콤했을 그 포도도 결국 맛을 보지 못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고독의 길'이라는 구간이 있는데 17km를 가는 동안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지는 않고 마을이나 바(bar)가 없을 뿐이었다. 하늘, 나무, 돌, 바람이 있었고 길 위에는 각자 몫의 시간과 사연들이 엮어지고 있었다. 고독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길은 다시 나눠질 것이다.

 

중간에 푸드 트럭 바가 있어서 마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 외국인은 우리가 한국에서 온 걸 알고는 "오! 한국! 월드컵 축구!" 라며 환호했다. 몇 년도였는지 기억을 더듬기에 2002년이라고 맞장구쳤다. 내킨 김에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 외쳤더니 박자에 맞춰 같이 박수를 치곤 엄지를 세웠다. 국경을 초월해 하나 되는 마음에 유쾌한 만남이었다.

 

길에서는 먼저 걸어간 분들의 귀한 흔적을 통해 시간을 넘어 만날 수 있었다. 조개모양이 있는 이정표 돌 위에는 등산화를 화병 삼아 야생화와 국기를 꽂고 선글라스까지 씌워뒀는가 하면 길바닥에 작은 돌을 모아 가야할 방향을 화살표로 만들어 두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가 새 힘을 얻고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주니 훌륭한 이정표들이다.

 

21.1km를 걸어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 도착해서 보니 며칠간 아프던 엄지발가락 발톱의 뿌리 쪽에 노랗게 염증이 생겼다. 이 길에서 발에 물집이 생기는 것쯤은 다반사라 놀라운 일도 아니고 생색낼 일도 아니다. 더구나 사서 하는 고생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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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3 [12:25]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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