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획/특집
기행
[기행] 800km 산티아고 순례길(2)
“누군가의 길 나의 길, 그 첫걸음”
기사입력: 2020/12/04 [12:45]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정은주 객원기자
▲ 첫 날 넘은 피레네 산맥     © UWNEWS

 

▲ 정은주 객원기자     ©UWNEWS

[울산여성신문 정은주 객원기자]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야고보를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다. 

 

9세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오늘날의 순례길이 생겨났다고 한다. 역사가 천 년이 넘는다고 하니 그 길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적과 사연들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만 모두가 그 길의 주인공이다. 

 

순례 길에서의 첫째 날 이른 새벽, 그 사이에 언제 준비하고 나갔는지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떠나고 없다. 침낭을 비롯해 짐을 챙기고 나가는 모든 준비를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신속히 해내기까지 우리에겐 그 후 더 많은 날들이 필요했다. 익숙함이란 반복이 주는 열매 중 하나가 아닐까. 익숙함이 주는 열매가 어떤 맛이 될지는 각자 형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낯선 것에 대한 설렘으로 출발했다.

 

알베르게는 공립과 사립 시설이 있는데 공립은 사립보다 대체로 숙박비가 더 저렴하다.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거의 기부금을 내고 이용한다. 전날에 받았던 순례길의 여행자임을 나타내는 하얀 조가비를 가방에 걸었다. 세탁한 빨래가 마르지 않아 그것도 가방에 옷핀으로 널다시피 걸고는 길을 나섰다. 소위 말하는 ‘폼생폼사’는 첫날부터 버렸다. 

 

출발지인 생장(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루트의 산티아고 순례 길은 친절하다. 길을 헤매지 않도록 친절히 알려주기에 길 잃을 염려 정도는 첫날부터 내려놓고 갈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곳이고 날마다 길 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적층된 정보와 현장에서 전해지는 싱싱한 정보가 처음 오는 발걸음이라도 어리둥절하거나 주저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곳곳에 노란색 화살표, 조개 모양 표지판이 안내하고 있었고, 걷다가 제자리에 서있기만 해도 손으로 가야할 방향을 가르쳐주는 현지인들도 자주 만난다. 뿐만 아니라 알베르게의 위치, 거리, 편의시설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고 일단 출발했던 우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게 되었는데 이곳은 일명, ‘나폴레옹 루트’라 하여 나폴레옹이 반도 전쟁 중에 부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드나들 때 즐겨 찾았던 길이며, 중세 때에는 순례자들이 숲속의 산적을 피해 선택한 길이라고 한다. 순례길 중 가장 가파른 오르막이고 힘든 길이 첫날에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이 다행일지 불행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용감하게 걸었다.

 

걷다 보면 목가적인 풍경에 눈이 호강한다. 이 풍경에는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로 길을 덮고 있는 소, 말, 양들의 배설물까지도 포함된다. 한번은 이곳에 트럭이 지나갔는데 한가로이 풀을 뜯던 어미 말과 망아지가 화들짝 놀랐고, 새끼 말은 펄쩍펄쩍 뛰며 가파른 산 아래로 내달렸다. 지나던 여행자들도 모두 숨죽여 지켜보았다. 잠시 후 어미 말은 히이잉 하는 소리로 새끼를 부르는 듯했고 망아지는 다시 엄마 말 곁으로 돌아왔다. 신호를 잘 듣고 무사히 와주어 감사했다. 

 

초원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남을 것은 남고 떠날 것은 떠났다. 우리들도 다시 걸어갔다. 오리송 산장이란 곳을 제외하고는 중간에 사먹거나 쉴 수 있는 카페도 없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했다. 이곳은 계절에 상관없이 날씨 상황을 잘 알고 출발하지 않으면 통행이 차단되거나 험한 날씨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우리보다 며칠 뒤에 왔던 어떤 여행자는 거센 바람에 날려서 몇 바퀴나 굴렀다고 한다. 하마터면 피레네 산맥 골짜기로 추락할 뻔했다며 살아남은 자의 영웅담을 들려주었고, 그런 줄도 모르고 넘어왔던 우리는 피레네 산맥을 향해 새삼스레 가슴을 쓸어내렸다.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고 말은 했지만 24.7km를 11시간이 걸려 도착했을 정도니 거북이걸음이 따로 없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구 수도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 정도로 지쳐서 절룩거렸다.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한국인은 우리 모녀가 무사히 넘어올 수 있을까를 도착하는 사람들마다 물어봤다고 한다. 피레네 산맥을 넘지 않고 우회해서 오는 길도 있었다는 것을 도착해서야 알았다. 어떻게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냐고 대단하다고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차마 피레네 산맥에 십자가를 세울 수 없어서 넘어왔습니다.”

 

다음 날 일어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을 정도였지만 다음 날을 걱정할 여력도 없이 침대를 배정받고는 기절하다시피 곯아떨어졌다. 사진으로만 봤으면 절경에 감탄했을 피네네 산맥도, 보기만 해도 역사를 품은 수도원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감도 육체의 피로감으로 인해 그때는 오롯이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래도 시작은 했다. 그것으로 우선 됐다.

산티아고 순례 길의 기특한 첫걸음!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